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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Feb 28. 2023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22

정인홍, 「나무이정표를 노래하다[詠木堠]」

22. 이정표만 남아 있네     

千古英魂楚覇靈(천고영혼초패령)   천고의 빼어난 영혼인 초 패왕의 혼령은  

渡江無跡只存形(도강무적지존형)   강 건너도 업적 없이 모습만 남아 있네. 

當時恨失陰陵路(당시한실음릉로)   그 당시 음릉에서 길 잃은 것 한이 되어  

長向行人指去程(장향행인지거정)   오래도록 행인에게 갈 길을 가리키네. 

정인홍, 「나무이정표를 노래하다[詠木堠]」     


[평설]

항우는 강동 땅 팔 천 명의 자제를 데리고 천하를 평정하러 강을 건너왔지만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서럽게 죽어갔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이라곤 항우와 관련된 곳이라는 이정표 뿐이다.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에 “유방(劉邦)에게 패전하여 도망하던 항우(項羽)가 음릉(陰陵)에 이르러 길을 잃자 한 농부에게 길을 물었더니, 그 농부는 왼쪽으로 가라 하기에 왼쪽으로 가다가 큰 늪에 빠져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라 했다. 천고의 영웅이 농부에게 속은 것이 한이 되어서 일까. 항우 자신은 당시 길을 잃었지만 훗날 이정표로 갈 길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길을 바로 간 사람도 뒷날에 길을 제시해 주지만, 길을 잘못 간 사람도 훗날에 더 분명하게 길을 가리켜 주곤 한다. 시인은 이정표를 보고서 영웅을 떠올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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