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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May 15. 2024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62

정조, 「영사(詠史)」 9수 중 5번째 시, ‘장량(張良)’

62. 신선 따라 떠난 사람

橋下神韜幄裏籌(교하신도악리주)   신묘한 병법 익혀 계책을 갖추고도 

靑齊三萬却封留(청제삼만각봉류)   좋은 땅 마다하고 유후에 봉해졌다, 

風塵餘策從仙去(풍진여책종선거)   다른 계책 세우고서 신선 따라 떠났으니 

一格爭高范蠡舟(일격쟁고범려주)   같은 품격으로 고상함 다툰 건 범려의 배이네. 

정조, 「영사(詠史)」 9수 중 5번째 시, ‘장량(張良)’    

      

[평설]

장량은 하비(下邳)의 다리 위에서 노닐다가,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태공병법(太公兵法)』을 받아서 병법을 익혔다. 한고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군막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 리 밖의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자방(子房, 장량을 가리킴)의 공이다.” 이러한 탁월한 재주를 갖추고 특출한 공을 세웠지만, 제나라 땅 3만 호를 사양하고 유(留) 땅에 봉해 달라 청한다. 그러다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도(仙道)를 배우려 한다며 훌쩍 떠났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장량과 비교할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초(楚)나라 사람 범려라면 장량과 비슷한 처신을 했다 할 수 있다. 그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서 오(吳)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는 서시와 함께 오호(五湖)에 배를 띄우고 치이자피(鴟夷子皮)라고 이름을 고친 다음에 월 나라를 떠나 한가하게 살았다. 장량은 떠날 때가 언제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고조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거의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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