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날마다 새롭게 스스로 힘써라
나는 어릴 때에 아는 것이 없었다. 관례를 할 때가 되어서도 오히려 아이와 같은 마음이 있었다. 부모의 사랑만을 우러러 믿고서 다시 『소학』이나 『대학』등의 책이 있는 줄도 몰랐다. 갑신년(1644년) 겨울 10월에 남원으로 가는 도중에 진백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읽고는 마음속으로 매우 좋아하여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 또 하루는 여관에서 묵고 있다가 밤에 누워 잠이 안 와서 나이를 꼽아 보았다. 무릇 손가락을 두 번 굽혔다가 다시 그 두 개를 펴야 했다. 한 해가 또 저물고 새해가 다가오니 드디어 근심하며 두려운 줄을 알아서 비로소 공부에 뜻을 두게 되었다. 남원부에 도착한 지 며칠이 되자 한 편의 명을 지어 벽에다 걸어두고 스스로 경계하노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만물 중에 으뜸이 된다. 받은 성품은 모두 선하지만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뉜다네. 마음은 본래 위태로우니 성실이 아니면 밝아지지 않누나. 성실한 데에는 방법이 있으니 경[敬]한 뒤에야 능할 수 있네. 움직임은 법도로써 하고, 보고 들음 예로써 해야 하네. 생각이 늘 여기에 있어야 하니, 앞 사람의 경계를 가슴 속에 새겨 두어라. 서서는 반드시 공수를 하고 앉아서는 반드시 무릎을 모아라. 날마다 새롭고 새롭게 하여 스스로 힘써서 쉬지 말라. 침묵 속에서 도리를 생각할 것이니 적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묘책이다. 착한 일을 보았으면 용맹하게 할 것이고, 덕을 행함에는 작은 것도 소홀히 말라. 삿된 욕심이 물러나서 없어지면 의리는 저절로 드러난다. 이는 성실과 공경을 이르는 것이니 여기에 마음을 두어라.
余自幼時, 無所知識, 及冠, 猶有童心. 仰恃父母之慈, 不復知有小學大學書矣. 逮甲申冬十月, 南原道中, 得陳南塘夙興夜寐箴, 心酷好之, 讀不釋卷. 又一日次旅舍, 夜臥無寐, 算及年齒. 指凡再屈而復伸其二矣. 歲亦暮, 新年又迫, 遂惕然知懼, 始有向學之志. 至府之數日, 作一銘揭諸壁上, 以自警云.
人生天地, 首立萬物. 性賦均善, 淸濁異質. 心兮本危, 非誠不明. 誠之有道, 敬而後能. 動作以度, 視聽以禮. 念茲在茲, 服前人誡. 立必拱手, 坐必斂膝. 日新又新, 自彊不息. 沈嘿思道, 少言最妙. 見善則勇, 爲德罔小. 邪欲退闢, 義理自著. 寔謂誠敬, 潛心於此.
민정중(閔鼎重, 1628~1692), 「自警銘 幷小序○甲申」
[평설]
민정중은 1644년 17세의 나이로 진백(陳柏)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읽었다. 그때 크게 느낀 바가 있어 공부에 뜻을 두고 이 명을 지었다. 민정중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진백의 숙흥야매잠을 읽고서 잠(箴)과 도(圖)를 지었다.
받은 성품이야 모두 선하다지만,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현인(賢人)과 우인(愚人)으로 나뉘게 된다. 마음은 늘 흔들리기 마련이니, 성실함으로 단단히 해야 한다. 성실함은 또 경[敬]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움직이는 것은 법도에 따라 하고, 보고 듣는 것도 예절에
따라 해야 한다. 서 있을 때에는 단정하게 공수(拱手)를 하고, 앉아 있을 때에는 무릎을 모아야 하는 법이다. 날마다 늘 새롭게 할 것을 생각하여 힘써서 쉬지 말아야 한다. 또, 입을 굳게 다물어서 침묵을 지켜야 된다. 선을 보게 되면 주저 없이 용맹하게 그 일을 하고, 덕을 베풀 때에는 작은 것이라고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나쁜 욕심들이 사라지게 되면 참된 의리는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誠]과 공경[敬]이니 늘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어석]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남당(南塘)의 진백(陳柏)이 지었다. 자(字)는 무경(茂卿)이며, 송대(宋代)의 학자(學者)이다.
* 덕을 함에는 작은 것도 소홀히 말라.[爲德罔小]:『서경』, 「이훈(伊訓)」에 “爾惟德罔小, 萬邦惟慶.”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