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현, 「鄴城」
50. 업성을 바라보며
漢月依依照露盤(한월의의조로반) 한나라 달 여전히 승로반 비추는데
金人獨自淚闌干(금인독자루난간) 구리 선인 홀로 난간에서 눈물짓네.
須知鄴下荀文若(수지업하순문약) 알겠구나. 업성 아래 순욱의 처신이
永愧遼東管幼安(영괴요동관유안) 요동 땅 관령에게 영원히 부끄럽단 걸.
이제현, 「鄴城」
[평설]
이 시는 위(魏)나라 도읍인 업성(鄴城)을 바라보며 선비의 출처 진퇴를 성찰한 작품이다. 1, 2구는 한나라 때의 유물인 승로반과 금인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왕조의 흥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승로반(承露盤)은 한 무제(漢武帝)가 신선이 되고자 만든 것으로, 높이가 20장이나 되는 거대한 구조물이고, 금인(金人)은 곧 이슬을 받기 위해 구리로 만들어 세운 선인(仙人)을 말한다. 시인은 ‘한나라 달’이라는 표현으로 이미 지나간 시대를, ‘눈물짓네’라는 의인화로 세월의 무상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3, 4구는 순욱과 관영의 처신을 대비하고 있다. 순욱은 조조 밑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으나 결국 조조의 찬탈 야욕을 보고 등을 돌렸다. 반면 관령은 혼란을 피해 요동으로 건너가 40년 가까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았고, 명제(明帝)의 부름도 거절했다. 시인은 대비를 통해 순욱의 처신이 관령의 고결한 절개에 미치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권력의 부침 속에서 선비의 진정한 처신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있다. 업성의 쇠락한 모습과 한나라의 유물들은 권력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시인은 이를 통해 순욱처럼 권력자를 섬기다 뒤늦게 등을 돌리는 것보다, 관령처럼 처음부터 맑은 절개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선비의 길임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