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사람의 음식남녀 53

『食色紳言』,[明]龍遵 著

by 박동욱

[53] 유가도 살생과 음주에 대해 예외일 수는 없다


산 것을 죽이고 음주를 숭상하는 것은 입과 배를 채우는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덧붙여 열거한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천지는 사물을 낳아서 사람을 기르고, 선왕들은 술을 만들어 기쁨을 같이 했으니 유자(儒者)가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금주와 살생, 두 개의 계명이 보이는 것은 거의 속세를 떠나 선도(禪道)에 들어간 것이니, 어째서 예를 폐하는 것인가?”

아! 순임금의 덕은 살리는 것을 좋아했고, 우임금은 의적(儀狄)을 소원히 했으니 성인은 애당초 경계하지 아니치 않았다. 곧 능히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소동파는 스스로 죽은 고기를 먹고 도간은 술을 마시는 것이 한정이 있었다 하니, 어찌 반드시 이것으로써 실정에 맞지 않게 석가의 말을 말했다고 여겨서 함부로 점검할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은 유가로 귀의한다는 이름을 빌어서 그 방자하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꾸미는 것일 것이니 되겠는가?


殺生崇飲, 口腹類也, 故附列焉. 或曰: “天地生物養人, 先王爲酒合歡, 儒者所不禁也. 二戒之示, 幾逃禪矣, 如廢禮何?” 嗟夫, 舜德好生, 禹疏儀狄, 聖人未始不戒也. 即不能然, 若東坡食自死肉, 陶侃飲有定限, 何如必以此爲迂論迦談而漫不知檢, 是假歸儒之名, 以文其肆無忌憚之行也而可乎?




[평설]

유가에서는 살생과 금주에 대해서 그다지 금기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생과 금주는 불가에서나 지키는 것이라 치부하곤 했다. 그렇지만 순임금은 살리기를 좋아하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있었고, 우임금은 술을 처음 만든 의적(儀狄)을 멀리 하였다. 유가에서도 살생과 금주를 경계하는 전통은 있었던 셈이다. 또 다른 경우에 소동파는 죽은 고기만을 먹었고 도간은 주량을 정해 놓고 먹었다. 이 사람들을 불가를 추종했다고 치부하는 것은 살생과 음주를 제멋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 유가의 이름을 빌어 구차한 변명을 한 셈이다.


[어석]

의적(儀狄): 우왕(禹王)의 신하로, 하(夏) 나라 때 최초로 술을 제조하였다는 전설상의 인물. 의적이 술을 제조하여 우왕(禹王)에게 바치니, 우왕이 이를 마셔보고 달게 여기면서 후세에 반드시 술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 하여 의적을 멀리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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