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93

고경명(高敬命), 「讀留侯傳」

by 박동욱

93. 한왕(韓王)의 충신에서 유방의 책사로

殲楚夷秦志已酬(섬초이진지이수) 진과 초 없애서 뜻 이미 이뤘으니

暮年還學赤松遊(모년환학적송유) 말년에는 도리어 적송자 배워 노닐었네.

平生祗爲韓仇出(평생지위한구출) 평생토록 오직 한(韓)의 원수 갚고자 나섰지만,

豈向高皇浪運籌(기향고황랑운주) 어찌 유방을 위해 헛되이 계책을 냈으랴

고경명(高敬命), 「讀留侯傳」


[평설]

이 시는 장량의 일생이 지닌 이중적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시인은 한(韓)나라의 유신(遺臣)에서 은자로, 이어 유방의 책사로 변모한 장량의 삶을 주목한다.

1, 2구는 장량의 대조적 면모를 보여준다. 진과 초를 물리쳐 한(韓)나라의 원수를 갚은 그가 홀연히 은자의 삶을 선택한 것은 그의 내면에 정치적 야망과 은일에의 동경이 공존했음을 말해준다. 3, 4구는 시의 핵심을 이룬다. 장량이 애초에 한(韓)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방을 보좌했으나 그의 지략과 충성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 새로운 왕조 건설의 토대를 이루었다. 한왕이 죽은 후에도 유방을 위해 그가 보인 혜안은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시는 복수와 건국, 충절과 책략, 정치와 은둔이라는 상반된 가치들이 한 인물의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룬 과정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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