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걱정을 해야 걱정이 없어진다
걱정은 즐거움에서 생기고 즐거움은 걱정에서 생기니, 사람이 작은 두려움이 없다면 반드시 큰 걱정이 있게 된다. 백성들은 매우 많으니 만승 천자의 걱정이다. 하지만 하나의 도시락 밥에 배부르기가 쉬우니 거지아이가 무슨 걱정이 있으랴. 걱정이 있는 자는 반드시 삼가야 할 것이니 삼가하면 걱정이 적다. 즐거운 자는 반드시 방탕하게 되고 방탕하면 걱정이 많게 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적에 버리기 어려운 것은 걱정이다. 그 걱정할 만한 것을 걱정하면 거의 걱정이 없게 되며, 오직 충성되게 하고 오직 믿음이 있게 하면 이러한 걱정에는 미치지 않는다. 횡역(橫逆)이 온다한들 내가 다시 무슨 걱정을 하리오.
憂生於樂, 樂生於憂. 人無少恐, 必有大憂. 兆民至繁, 萬乘之憂. 簞食易飽, 丐兒何憂. 憂者必愼, 愼則少憂. 樂者必放, 放而多憂. 人之生世, 難捨者憂. 憂其可憂, 庶幾無憂, 惟忠惟信, 不逮是憂. 橫逆之來, 我復何憂.
오원(吳瑗, 1700∼1740),「憂箴 庚子」
[평설]
이 글은 1720년에 지어졌는데 당시 그의 나이 21세였다. 걱정[憂]과 즐거움[樂]에 대한 탁견을 보여준다. 정말 즐겁기 위해서는 걱정을 해야 한다. 걱정을 하지 않았다가는 정말 걱정할 거리가 찾아온다. 즐겁기 위해 먼저 걱정을 하든 즐겁다가 뒤에 걱정을 하든 인간은 끝내 걱정 속에 살아가야 한다. 걱정은 삼감[愼]과, 즐거움은 방탕함[放]과 각각 짝을 이루다가 반대의 길로 간다. 걱정을 하는 자는 즐거움의 길로, 즐거움을 찾는 자는 걱정의 길로 가야 한다. 또 걱정을 없애기 위해서도 결국 걱정을 해야 한다. 걱정을 막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 충(忠)과 신(信)이 있을 뿐이다. 간혹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무사태평한 사람도 만날 수 있다. 자기 자신은 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스스로는 걱정이 없을지 몰라도 남에게 걱정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