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석복(惜福): 복을 아껴 써라 2

by 박동욱

2) 가문의 영광을 조심하다

인재(忍齋) 홍섬(洪暹, 1504~1585)은 비록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초헌(軺軒)을 한번도 타지 않았다. 하루는 어쩌다 초헌을 타고 나갔다가, 그 길로 아버지 문희공 홍언필의 집에 들렀다. 문희공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초헌의 바퀴 자국을 보고 사람을 시켜 초헌을 가져오게 해서 대문 위에다 매달아 두게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초헌을 내려주며 말했다.

“아비가 가마를 타는데 자식이 초헌을 타다니, 네 마음이 편안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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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섬은 높은 벼슬에 올랐음에도 초헌(軺軒)을 타지 않았다. 초헌은 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고관만이 탈 수 있는 외바퀴 수레로, 지금으로 치면 장관급 관용차다. 그는 초헌을 탈 자격이 충분했지만 아버지의 엄명 때문에 감히 타지 못했다.

홍언필은 이토록 엄한 아버지였다. 자식이 고관이 되어 행차할 때 벽제(辟除, 행차 시 길을 비키라 외치는 것) 소리조차 집 근처에서는 내지 못하게 했다. 홍섬이 승지가 되어서도 매일 독서를 숙제로 내주었다. 어느 날 부자가 함께 경연(經筵)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를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기는커녕 마치 병든 사람처럼 문안도 받지 않고 앓아누웠다. “부자의 영예가 너무 지극하니, 나는 이것이 두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홍언필은 분에 넘치는 호사는 남의 눈에 거슬리게 되고, 그것이 재앙의 빌미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혼내지 않으면 자식은 세상에 나가 혼이 난다. 내 자식 귀하다 감싸기만 하면, 결국 세상이 그 자식을 내치게 된다.


현량과(賢良科)가 처음 시행되었을 때, 정민공(貞愍公) 안당(安瑭, 1461~1521)의 세 아들 안처선(安處善)과 안처겸(安處謙), 안처근(安處勤)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다. 안당이 크게 놀라 탄식하며 말했다.

“세 아들이 함께 같은 방에 이름을 올리다니, 이는 고금을 통틀어 드문 일이다.”

뒤에 송사련(宋祀連)이 무고를 하여 세 아들이 모두 화를 입게 되었다.


안당의 세 아들은 과거 시험에 함께 합격하였다. 과거 시험에서 아들 한 명이라도 합격시키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안당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탄식하며 두려워했다. 누군가의 영광이 정적(政敵)에게는 뚜렷한 공격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뒤에 송사련(宋祀連)의 무고로 인해 세 아들이 모두 화를 입는다.

세상 살이는 알면 알수록 무섭다. 성공을 향해 달리기는 어려워도, 한번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지기는 쉽다. 세상은 마치 수많은 CCTV처럼 나를 지켜본다. 그중에 따뜻한 격려의 눈길도 드물게 있겠지만, 티끌같은 실수를 찾으려는 매서운 눈초리가 더 많다. 그러니 잘나갈 때일수록 얇은 얼음을 밟는 듯 살금살금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옛 사람들이 가문의 성공 앞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대신, 몸을 낮추고 전전긍긍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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