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복(惜福): 복을 아껴 써라 3
3) 성공의 속도를 늦추다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이 31세의 나이로 대학사(太學士)가 되었는데, 당시 가장 젊은 인물이었다. 이때 대제학(大提學) 자리가 공석이 되자, 한음과 김성일(金誠一)이 통정(通政) 관직으로 함께 후보에 올랐다. 권점(圈點, 인사 심의) 과정에서 우의정(右相)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이 유독 이덕형에게 표를 주지 않으며 말했다.
“어찌 31세의 젊은이가 대제학이 될 수 있겠는가? 나는 그가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심수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덕형은 대제학에 임명되었다.
이 일화는 『지봉유설』에 실려 있다. 대제학은 학문적 명망과 정치적 경륜을 겸비한 대신이 맡는 자리다. 지금으로 치면 서울대학교 총장이나 교육부 장관에 해당한다. 그런 자리를 놓고 당시 31세의 젊은 이덕형과 53세의 노련한 김성일이 후보에 오르게 된다. 심수경은 31세의 청년이 이 막중한 자리에 오르는 것을 마뜩잖게 여겨 이덕형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이덕형이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너무 이른 출세로 교만한 마음이 생기거나,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서 실수하여 경력에 흠집이 날까 염려한 것이다.
이덕형은 심수경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31세에 대제학, 38세에 정승, 43세에 영의정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젊은 관료를 진심으로 아끼던 심수경의 배려는 여전히 값지다. 진짜 어른은 후배의 앞길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사람이다. 이덕형은 이런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선시대 최연소 대제학이 된 이후 잇따른 고속 승진 속에서도 심수경의 우려를 기우(杞憂)로 만들었다.
광릉(廣陵) 이극배(李克培, 1422~1495)가 자제들을 타이르며 말했다.
“모든 것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기울게 마련이니, 너희들은 결코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는 두 손자의 이름을 수겸(守謙)과 수공(守恭)이라 짓고, 그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는 결국 겸손과 공손함 이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름은 통상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짓기 마련이다. 그 이름에는 작명한 사람의 품격과 철학이 담긴다. 이극배는 손자의 이름에 돌림자 수(守)를 넣어 수겸과 수공으로 지어서 겸손과 공손을 지키며 살라고 당부했다. 겸손과 공손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태도다. 이렇게 살면 적이 생길 리 없다. 그 반대는 교만과 불손이다. 바로 적을 부르는 주문이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손자들은 “겸손하라! 공손하라!”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으리라. 가장 낮은 처신이야말로 가장 높이 올라가는 길임을 이름 두 글자로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