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복(惜福): 복을 아껴 써라 4
4) 검소함으로 채우다
지봉(芝峯) 이수광(李晬光, 1563~1628)은 음악과 여색, 화려한 사치를 담담히 여겨 좋아하는 바가 없었다. 향을 사르지도 않았고, 촛불을 켜지 않았으며, 잔치를 열지 않았고, 음악을 듣지도 않았다. 식사할 때 두 가지 반찬도 없었으며, 앉을 때는 변변한 방석조차 없었다. 한 벌 갖옷을 15년 동안 계속 입었다.
평상만 놓여 있고 방에는 먼지가 가득했으나, 그는 오히려 편안하게 지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그를 대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스스로 물러날 정도였다.
임종 때, 친척과 빈객들이 모여 염습을 하며 모두 말했다.
“비단옷으로 공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오직 흰 명주옷만을 입혔으니, 이는 그의 평소 뜻을 따른 것이었다.
쾌락을 누림으로써 얻는 즐거움도 있지만, 쾌락을 끊음으로써 얻는 즐거움도 있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누려야만 행복하다고 믿지만, 다 누리지 않고도 충만할 수 있다. 이수광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일체의 것들을 즐기지 않았다. 옷과 음식, 물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은 죽음에 임해서도 이어졌다. 그는 화려한 수의(壽衣)보다 소박한 수의를 입기를 바랐다. 그의 다른 글에는 이런 말들도 나온다.
가난한 사람은 주머니에 한 푼도 없지만, 한 번 배부르게 먹고 취하면 기쁨에 넘쳐 분에 넘치는 행운이라 여긴다. 반면 부잣집 자식은 집에 만금을 쌓아두고도 다급히 이익을 쫓아다니며, 마치 모자라는 듯이 행동하여 단 하루도 즐거움을 모른다. 어찌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보다 못해서이겠는가? 본래의 마음을 잃어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한 부자가 너무나 많다. 가난한 사람은 작은 것에 감사하지만, 부자인 사람은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잊은 채 더 갖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렇다면 진짜 가난한 사람은 누구인가?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은 소반에 두 가지 이상의 고기가 오르면 그 중 하나를 치우라 명하였다. 평소 개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었으며, 비단이나 명주 같은 것들은 몸에 걸치지 않았다.
집 주변에 뽕나무와 산뽕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게 하였으나, 누에 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말하였다.
“지팡이를 짚고 그 아래를 거닐며, 푸른 잎이 우거진 그늘에서 맑은 바람이 스쳐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앞 냇가의 물고기와 게도 잡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공자도『논어(論語)』「이인(里仁)」에서 “선비가 도(道)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도를 의논할 수 없다.[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라고 하였다. 보잘것없는 옷과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두 가지 고기, 두 가지 반찬을 피한다는 말은 청빈한 삶을 다룬 고전의 단골 표현이다. 퇴계 이황이나 소동파 같은 인물들도 이러한 소박한 밥상을 실천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요즘 유행하는 먹방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듯하다. 남이 먹는 것을 보느라 나의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허전해서, 그 공허함을 시각적 포만감으로 채우려는 현대인의 슬픈 초상이다.
성수침은 누에도 치지 않았고, 물고기와 게를 잡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경외를 갖고서 자연을 풍족하게 즐겼다. 착취와 소유를 멀리하고 공존과 조화를 모색하는 삶이 필요하다. 내가 진정 가져야 하고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