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1. 석복(惜福): 복을 아껴 써라 5

by 박동욱

5) 나를 비워 세상을 채우다

효종(孝宗)이 한번은 금원(禁苑)의 초당(草堂)에 거둥하셨을 때, 상식(尙食)이 점심 수라를 올렸다. 한 시신(侍臣)이 밥에 물을 부어 말았으나,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하자 왕이 꾸짖었다.

“처음부터 양을 헤아려 물을 부어서 남는 것이 없게 해야 한다. 물을 부어 남은 밥이라도 짐승이 먹으면 쓸모가 있겠지만, 비천하고 무지한 자들이 곡식의 소중함을 모르고 땅에 내버리는 것은 하늘이 내린 물건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는 복을 아끼는 마음이 전혀 아니다.”

수라상을 거둘 때 가만히 살펴보니, 왕의 밥그릇에는 한 톨의 밥도 남아있지 않았다.


효종이 신하와 있었던 일이다. 한 신하가 밥을 물에 말아 먹다 밥을 남기자, 효종이 밥을 남긴 일을 나무란다. 효종은 밥 한 톨 남기는 것도 허투루 보지 않았다. 예전에는 우리네 밥상머리 교육도 그랬다. 밥그릇에 밥알을 남기면 농부의 피땀을 버리는 것이라며 호되게 혼났다. 이것은 단순히 밥 한 톨을 아끼려는 인색한 마음이 아니다. 밥 한 그릇이 내 앞에 오기까지 수고한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예우이자 경외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은 작은 일에도 마음을 다했다. 보리와 벼를 수확할 때면 이삭 한 톨도 들판에 남기지 못하게 했고, 낟알 한 알도 마당에 흘리지 못하게 했다. 빻은 쌀과 쌀겨 부스러기까지 모두 모아 두었다가 춘궁기가 되면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떤 이가 이를 지나치다고 나무랐지만, 공은 웃으며 말했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세심한 법이오.”


작은 일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 김안국은 수확할 때 낙수(落穗, 떨어진 이삭)가 하나라도 있으면 불호령을 내렸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재물은 자신의 창고를 불리는 대신 백성들의 배를 채우는 데 쓰였다. 아껴서 얻는 이익이 나를 향하면 인색이 되지만, 남을 향하면 시혜(施惠)가 된다.


영의정 이시백(李時白, 1581~1660)은 대대로 청렴과 검소를 집안의 가풍으로 삼았다.

어느 날 부인이 비단에 수를 놓은 방석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마당에 부들자리를 펴도록 명하였다.

부인을 공손히 맞이하여 함께 앉으며 말했다.

“이것이 내가 예전부터 깔고 쓰던 자리요. 내가 다행히 어진 임금을 만나 외람되이 높은 벼슬에 올랐으나, 부들자리에도 마음이 불편한데 하물며 비단 방석에 어찌 앉을 수 있겠소?”

부인은 부끄러워하며 비단 방석을 곧 찢어 버렸다.


옛날 사람들은 물건에 대한 집착을 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정수강(丁壽崗)은 한 번도 화려한 화문석을 깔지 않았고, 목서흠(睦叙欽)은 평생 털가죽 옷을 입지 않았다. 정응두(丁應斗)는 한겨울에도 털방석을 깔지 않으며 “내가 복을 혼자 다 누린다면 자손에게 남을 복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집안에는 일찍 죽는 아이가 없었다고 한다. 김시진(金始振)은 썩은 서까래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고 살았다.

물건에 정신이 팔릴수록 마음은 가난해진다. 명품을 갖는다고 사람이 명품이 되지 않는다. 물건은 결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좋은 물건에 집착할수록 더 좋은 것을 탐하는 욕망의 무한 루프(Loop)에 빠질 뿐이다. 이들은 누릴 수 있는 지위와 부가 있었음에도 극도로 절제했다. 그것은 남의 시샘을 피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자기 자신이 물건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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