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3. 환택(宦澤): 공직자가 지켜야 할 것들 3

by 박동욱

2) 권력 앞에서도 당당하다

성종조(成廟朝)에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이 이조판서 현석규(玄錫圭)를 소인이라 비판하며, 당나라의 악명 높은 신하 노기(盧杞)와 송나라의 변법자 왕안석(王安石)에 비유했다. 임금이 진노하여 국문을 명했다.

"기망죄(欺罔罪)는 사형에 해당하노라. 네가 지금도 현석규를 소인이라 여기느냐? 네가 전에 저지른 일은 실수였느냐? 그를 노기와 왕안석에게 비유함은 나를 당 덕종과 송 신종에 비교하는 것이냐?"

김언신이 두려움 없이 답했다.

"신이 석규를 탄핵한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그는 참으로 소인입니다. 덕종은 단 한 명의 노기를, 신종은 단 한 명의 왕안석을 등용했습니다. 그러나 현석규는 이 두 사람의 음험함과 간사함을 겸비했음에도 전하께서 그를 중용하시니, 신이 감히 잘못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예상 밖의 답변에 성종의 안색이 변했다. 잠시 후 왕은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간언하는 신하를 죽인 군주는 오직 걸왕과 주왕뿐이니, 내가 어찌 간신을 죽이겠는가? 당 태종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간언 수용에 인색해졌으나, 나는 결코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네가 옥에 갇힌 것은 오직 너의 고집 때문이었다. 네 굽히지 않는 강직함과 충심을 가상히 여기노라. 네가 말할 일이 있으면 끝까지 다 말하라. 바로 관직으로 돌아가라."

이어 성종은 승정원에 명하여 김언신에게 술을 하사했다.



김언신(金彦辛)은 현석규(玄錫圭)를 소인이라 일컬으며 노기(盧杞)와 왕안석(王安石)에게 빗댔다. 그 말의 속뜻은 성종이 이들을 등용한 당 덕종과 송 신종의 안목 없음마저 함께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니, 성종을 강렬하게 저격한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성종은 처음에는 몹시 불쾌했으나 감정을 추스르며, 간신(諫臣)을 처벌한 걸왕과 주왕, 만년에 간언 수용에 인색했던 당 태종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는 김언신을 옥에서 풀어주고 원직에 복귀시킨 뒤 술을 하사한다. 너는 네 할 일을 계속하라는 의미다. 신하의 직언과 군주의 아량을 보여준다. 이는 수시로 격노하며 자신의 감정조차 추스르지 못했던 지도자와는 여러모로 비교된다.

현석규는 소인으로 지적될 만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언신의 간언이 전적으로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걸고서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기개와 그 직언을 받아들이는 군주의 아량만은 참으로 아름답다. 흥미로운 것은 김언신과 성종의 관계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점이다.『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김언신이 경연 때 “처음이야 잘하지 않는 이 없으랴마는, 끝까지 잘하는 이는 흔치 않다.[靡不有初 鮮克有終]라는 시경 구절을 써서 책상 옆에 두고, 출입할 때마다 보며 잠시도 잊지 말라고 간언하자, 성종은 이를 침실에 두고 병풍에 적어 항상 보고 있다고 답했다.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신하와 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군주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였다.





참찬(參贊) 백인걸(白仁傑)과 허자(許磁)는 이웃으로 지내며 매우 친밀했다. 허자는 진귀한 음식을 얻으면 반드시 백인걸에게 나누어 주었으니, 그의 가난한 처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비밀 조서가 처음 내려지자 조정은 소란스러웠다. 대사헌 민제인(閔齊仁)과 대사간 김광준(金光準) 등이 윤원형(尹元衡)의 사주를 받아 행적이 괴이하고 은밀해지자, 하루아침에 화를 입을지 모를 상황이 되었다.

허자가 백인걸을 초청해 저녁을 함께하며 물었다.

"내일 대간들이 비밀 조서를 논핵할 텐데, 그대는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니 어찌하시겠소?"

백인걸이 단호히 답했다.

"이미 몸을 임금께 바쳤으니, 어찌 사사로운 일을 돌아보겠소?"

허자가 갖은 방법으로 설득하고 위협했으나, 백인걸은 끝내 뜻을 꺾지 않았다. 허자가 탄식하며 말했다.

"내일 그대는 반드시 죽을 것이오."

백인걸이 작별하려 하자, 허자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일이면 그대는 군자가 되고, 나는 소인이 되는 날이 되겠소."

이를 보면 소인도 스스로 소인 됨을 잘 알고 있음이 드러난다.



허자와 백인걸은 이웃에 살았다. 백인걸의 어려운 처지를 뻔히 아는 허자는 귀한 음식을 나눠 먹곤 했다. 당시 윤원형 일파가 대윤(大尹)파를 제거하기 위한 비밀 상소를 올렸다. 이에 허자는 백인걸이 비밀 상소를 비판하는 데 참여할 것을 알고 백인걸을 회유하였다. 허자는 윤원형 쪽의 사람이었으니 정치적 목적이 깔린 제의였다. 또, 윤원형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알고 있었던 허자로서는 인간적인 정으로도 백인걸을 만류한 것이다. 허자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라 할 만다. 소인도 자신이 소인의 길을 걷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으니 허자가 아주 막돼먹은 소인은 아니었던 셈이다.

백인걸은 조광조의 문인이었다. 송시열은「休菴白公神道碑銘 幷序」에서 “소인들의 끝없는 흉계 속에 군자들은 도륙되는 살덩이 되었고, 이름 높던 신하들도 입 다물고 손 움츠리네. 오직 공만 충정 뽐내어 맹분과 하육도 꺾지 못하리. 곤궁하게 떠돌 때도 그 마음 더욱 결백하였네.[小人究凶, 君子爲肉, 厖臣舊弼, 口緘手縮. 公奮其忠, 賁育莫奪. 流離困㞃, 我心彌白]”라 하였다.




항재(恒齋) 유운(柳雲)은 정암(靜菴) 조광조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성품이 방탕하고 절제가 없어 당시 사대부들의 비난을 받았다. 충청도 감사로 부임했을 때 단양루에 시 한 수를 남겼다.

"흉악한 돌들을 모두 걷어내고

맑은 물이 고르게 흐르게 하리라

바람을 잡아 해신을 가둔 뒤에야

비로소 내 배를 띄우리라"

정암이 간신들에게 패한 뒤, 사람들이 유항재의 시를 전하며 읊조리면서, ‘유항재가 청류(淸流)들에게 배척당해 이런 시를 지었나?’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유항재를 천거하여 대사헌에 오르게 하자, 그는 임명 당일 바로 금부(禁府)로 달려가 문밖에서 정암을 불러내 손을 잡고 통곡했다.

"오래전부터 일이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지만, 이토록 극단적 상황이 될 줄은 몰랐소."

그는 즉시 심정(沈貞)의 간악함을 탄핵하고, 또한 권신들을 면전에서 꾸짖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척당해, 평생 곤궁한 처지에서 생을 마쳤다.



유운은 성품이 방탕하여 당시 사대부들의 비판을 받았다. 정사를 돌보지 않고 기생들과 술만 마신다는 이유로 탄핵까지 받았다. 그때 지은 시에서 남곤 일당은 흉악한 돌, 바람, 해신을 조광조 등의 사림파로 제멋대로 해석했다. 유운이 이미 사림파에게 배척을 받았으니 자신의 편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그를 대사헌에 임명했다. 그러나 유운이 대사헌이 된 다음에 남곤 일당에 협력하지 않았다. 도리어 대간들을 거느리고 청하기를 “전하께서 다시 조광조를 쓰시어 임금과 신하가 옛날과 같으면 신 등이 마땅히 직에 나아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청컨대 신들을 죽여서 간인(奸人)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소서.”라고 하여, 조광조를 구원하고자 하다가 파직당하였다.

그렇다면 이 시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사실 흉악한 돌, 바람, 해신은 남곤 일당이었다. 유운은 그 뒤 향리에 묻혀 술로 울분을 달래다 생을 마쳤다. 남곤에게 협력하면 출셋길이 보장되었지만, 조광조를 지지하며 고난의 길을 자초하였다. 소인배는 현실적 유불리에 의해 행동하지만, 군자는 진실과 명분에 의해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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