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3. 환택(宦澤): 공직자가 지켜야 할 것들 8

by 박동욱

7) 사람을 얻는 기술 (교화 敎化)

이참판 항(李參判 沆)이 안주 목사로 부임하여, 긴 쇠몽둥이를 만들어 청색과 홍색으로 꾸미고 관청 뜰에 세운 후, 엄하게 명령하였다. “나는 매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죄가 있으면 곧바로 이 몽둥이로 쳐서 죽일 것이다.” 온 고을이 두려워 떨며 법을 어기는 자가 없었고, 임기를 마칠 때까지 매를 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작은 과실은 모두 기록에 남겨두고, 달이 끝날 때마다 아전이 기록을 가지고 심리를 청하자, 이항이 말하였다. “그대로 기록에 남겨 두어라.” 다음 달에도 또 청하자, 또 말하였다. “그대로 기록에 남겨 두어라.” 해가 지나도록 모두 이렇게 하였다가, 떠나는 날에 모두 없애버렸다.



이항이 목사 때 일어난 일이다. 그는 사람 때리는 것이 싫으니 쇠몽둥이로 단숨에 때려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이항의 쇠몽둥이는 처벌 도구가 아니라 전시용이었다. 이 엄포가 통했는지 그의 임기 동안 법을 어긴 사람이 없었다. 이항의 말은 큰 죄를 지어서 처벌의 대상이 없기를 바라고, 절대로 사람을 때리고 싶지 않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작은 과실은 기록에 남기기는 했지만, 목사를 그만두고 돌아갈 때 기록을 다 폐기했다. 처벌에 목적을 둔다면 몸만 괴롭게 할 뿐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심여주(沈呂州) 우정(友正)이 강화부사로 있을 때, 한 도둑이 밤에 무기를 들고 그의 사촌 형 집을 털다가 잡혀 관청에 고발되었다. 심문하니 도둑이 모두 사실대로 자백하였다. 공(公)은 이에 사촌 형을 불러 말하였다. “사촌 형도 같은 한 기운(혈육)인데, 집에 남은 곡식이 있으면서도 서로 구제하지 않아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네 동생이 도둑질을 하게 한 것은 모두 네가 초래한 것이다.”

사촌 형을 꾸짖는 데는 도둑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엄격했으나, 곧바로 도둑을 불러 앞에 세우며 말하였다. “너는 내 말을 들었느냐?” 도둑이 공손히 두 손을 올리며 말하였다. “비록 죽게 되더라도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즉시 도둑을 풀어주고 그의 처자를 데려오게 하여, 관아 행랑 아래에 머물게 하고 관청의 말을 먹이며 관아의 당번 군졸로 배치하여, 쌀을 얻어 스스로 생계를 꾸리게 하였다. 누군가가 말하였다. “저자는 도둑인데 어찌 이토록 가까이 두십니까?” 공이 말하였다. “도둑도 본디 선량한 백성이다. 내가 어찌 의심하겠는가?” 구제하여 일을 마친 후 남쪽 밭으로 돌려보냈다. 그 사람이 두세 번 절하며 사례하고 떠났다. 그의 인자하고 후덕한 정치가 이와 같은 경우가 많았다.

또 말하였다. “옥사(獄事)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이 감옥에 갇히면 온 집안이 생업을 잃는다. 감옥의 고통은 하루가 한 해 같으니, 어찌 오래 가둘 수 있겠는가?”



사촌 동생이 사촌 형의 집을 털다가 붙잡혀 왔다. 심우정은 도둑인 사촌 동생보다 사촌 형을 질책했다. 그가 분노한 지점은 도둑질이 아니라 비정함이었다. 피붙이가 어려움에 빠졌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사촌 동생을 처벌하기보다 거처를 마련해주고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는 대신 사회의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복귀시켰다. 처벌은 과거에 갇히게 하는 것이고, 교화는 미래를 열어주는 일이다. 심우정은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벌을 잘못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그 사람의 가족까지 파괴시킬 수 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만큼 강한 갱생의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없다.



경기도 관찰사 최지천(崔遲川) 명길(鳴吉)이 경기 지역을 순행하며 통진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당시 함릉군(咸陵君, 李澥를 가리킴)이 통진 현감으로 재임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명성과 치적이 뛰어났다. 그러나 함릉군은 아전들을 젖은 장작처럼 억눌러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게 했고, 최공(崔公)은 정치를 하며 엄격함과 가혹함을 숭상하지 않고, 오직 아랫사람의 사정을 다 헤아리는 데 힘썼다.

이야기 중에 최공이 물었다. “나의 정치에 만일 결점이 있다면, 말해주시되 숨김없이 다 말씀해 주십시오.” 함릉군이 말하였다. “영감님의 정치가 요즘 보기 드문 훌륭함이니, 수령들도 진심으로 복종합니다만, 지금 보니 아전들이 매우 엄숙히 두려워하지 않고, 혹은 허리를 펴고 걸어 다니기도 하는데, 이것이 큰 결점입니다.” 공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들도 또한 남의 자식이다. 어찌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털과 뼈가 오싹할 정도로 두렵게 한 뒤에야 훌륭한 정치라 할 수 있겠는가?”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아랫 사람을 쥐잡듯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래 사람에게 너그러운 사람이다. 사람을 부리다 보면 꼭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겸상을 오래 하다 보면 위아래가 없어서 윗사람의 영이 세워지지 않는다. 반면에 아랫사람을 꽉 틀어쥐고 있으면 겉으로는 쌩쌩 잘 돌아가는 것 같아도 단지 위장 군기일 뿐, 서로 간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강온 양면 전략을 쓰는 것이 이롭다.

사람을 다루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최명길과 함릉군의 일화다. 함릉군은 최명길에게 아랫사람을 좀 틀어쥐라고 조언을 한다. 그런데 최명길의 답변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들도 또한 남의 자식이니 두렵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말한다. 이 말은『남사(南史)』의 “남의 자식이니까 잘 대우해야 한다(此亦人子也, 可善遇之)”라 나온다. 이들 또한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내 자식이 소중하다면, 남의 자식 또한 그 부모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주다. 그 부모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어찌 함부로 남을 대할 수 있겠는가. 갑질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되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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