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해분(解紛): 꼬인 매듭을 푸는 지혜 4
4) 한 마디로 위기를 돌리다
윤해평(尹海平) 근수(根壽)가 명종 때 『육신전(六臣傳)』을 펴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크게 노하여 그를 끌어내라 명하였다. 이율곡(李栗谷)이 선조 때 다시 같은 요청을 올리니, 임금이 말하였다.
“『육신전』을 집에 간직하는 자는 역적으로 논죄할 것이다.”
좌우의 신하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떨었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말하였다.
“국가에 불행히도 난리가 일어난다면, 신 등을 신숙주(申叔舟)가 되게 하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성삼문(成三問)이 되게 하고자 하십니까?”
임금이 이 말에 노여움이 풀렸다고 한다.
옛사람 중에 ‘몇 마디 말로 황제의 마음을 돌린 자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에 가깝다고 하겠다.
『육신전』은 남효온(南孝溫)이 쓴 사육신의 전기(傳記)다. 이 책은 매우 민감한 책이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한 충신들의 이야기다. 국가에서 마냥 사육신을 현양할 수 없는 이유는 국가의 정통성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육신전』의 유포는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윤근수가 육신전 유포를 허용해 달라고 청하자 명종은 격노하여 조정에서 끌어내라고 했고, 이이가 또다시 같은 요청을 올리자 임금이 육신전을 소지하는 것만으로 역적으로 취급한다고 천명했다. 두 명의 임금이 중신의 요청에 이처럼 반응한 것으로 보아 이 일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잘 알 수 있다.
이이에 이어 유성룡이 선조에게 국가에 난리가 발생할 때 신숙주와 성삼문 둘 중에 어떤 신하를 원하냐고 질문을 하였다. 신숙주라고 답하면 변절자를 원한다는 말이 되고, 성삼문이라 답하면 육신전을 금지하는 것이 모순된다. 임금은 외통수에 걸렸다. 유성룡은 앞선 윤근수와 이이와는 달리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왕의 마음을 바꿔 놓으려 했다. 선조가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불쾌해한 것을 유성룡은 미래의 충성심 문제로 뒤바꿔 놓았다. 유성룡은 팩트를 놓고 싸우지 않고 관점을 놓고 싸우려 했다. 이 말을 들은 선조는 노여움을 거두었다. 당연히 국가가 위급할 때 신숙주 같은 변절자가 아니라 성삼문 같은 충신을 원한다. 이것이 육신전을 읽어야만 하는 까닭이다.
선조가 일찍이 측근 신하들에게 물었다.
“짐은 옛 군주와 비교해 볼 때 어느 군주와 비슷한가?”
정이주(鄭以周)가 대답하였다.
“요순(堯舜)과 같은 군주이십니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대답하였다.
“요순이 되실 수도 있고, 걸주(桀紂)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임금께서 말씀하셨다.
“요순과 걸주가 그렇게 비슷한가?”
김성일이 대답하였다.
“성스러운 자질이 높고 밝으시니 요순이 되시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성인(聖人)이라 여기시며 간언(諫言)을 거부하는 병통이 있으니, 이는 걸주가 망한 이유가 아닙니까.”
임금께서 얼굴빛이 변하시며 용상(龍床) 주위를 배회하시니, 좌우 신하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나아가 아뢰었다.
“두 분의 말씀 모두 옳습니다. 요순에 빗댄 것은 임금을 인도하는 말이고, 걸주를 들어서 말한 것은 경계하는 뜻입니다.”
임금의 노여움이 풀리셔서 술을 하사한 후 파하였다.
선조와 신하들과의 대화이다. 선조는 옛 군주 중에 자신을 누구에게 빗댈 수 있는지 질문한다.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는 뻔하다. 자신을 훌륭한 사람과 빗대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정이주는 군주가 딱 듣고 싶은 아첨에 가까운 대답을 했고 김성일은 군주의 귀에 거슬리는 대답을 했다. 김성일은 선조가 간언을 듣기 싫어하니 걸주에 가까운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충언한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성군인 척하지만, 사실은 폭군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임금을 직격했다. 속내는 걸주의 길을 가고 있지만 요순의 길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깔린 말이다. 그러나 취지는 매우 훌륭하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불쾌할 수 있다.
유성룡은 정이주와 김성일의 말이 모두 옳다고 말했다. 기계적인 중립을 택한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면서도 메시지는 전달할 방법을 취했다. 그러면서 김성일의 가혹한 직언을 경계로 바꿨고, 정이주의 아첨을 인도로 뒤바꿔 놓았다. 덕분에 선조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김성일의 경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오히려 진실은 김성일의 말에 있지만 군주의 포용과 아량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직언은 용기에서 나오지만, 직언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지혜에서 나온다. 직언만 가지고서 항상 최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낙전만록』에 이른다.
“선군(先君, 여기서는 신흠을 가리킨다)께서는 친구의 급한 어려움을 보면 힘을 다해 구하시기를,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소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하셨다. 기자헌(奇自獻)이 정엽과 서로 사이가 나빠서, 반드시 그를 죽음의 지경에 몰아넣으려 하였다.
어느 날 기자헌이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오늘 아침 제 집 대문에 익명의 편지가 있었는데, 곧 조정을 비방하는 글입니다. 필적을 보니 마치 아주 유명한 선비가 쓴 것 같습니다.’
대개 정엽을 지목하는 것이어서 선군께서는 즉시 수레를 타고 가서 그를 만났다.
기자헌이 그 편지를 꺼내려 하자, 선군께서는 곧바로 손을 내저으며 말씀하셨다.
‘익명의 편지라면 편지 속에서 말한 뜻을 듣고 싶소.’
기자헌이 그것을 외워 말하자, 선군께서 말씀하셨다.
‘영공(令公)께서는 아무개를 의심하시오? 이것은 결코 아무개의 소행이 아닙니다. 반드시 아무개와 영공을 미워하는 자가 있어, 이 편지를 만들어 영공을 자극하여 내쫓으려는 것이오. 아무개가 이로 인해 죄를 얻는다면, 영공께서는 익명의 편지로 옥사를 일으킨 재상이 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오.’
기자헌이 그 말에 수긍하였다. 그의 집과 정엽의 집이 매우 가까웠는데, 선군께서는 정엽의 문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기자헌이 과연 사람을 시켜 뒤를 밟게 하였는데, 선군께서 정엽의 문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알고 마음이 풀려 그 일을 그만두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신익전(申翊全)이다. 여기에 나오는 선군(先君)은 신익전의 아버지 신흠이다. 신흠과 정엽은 같은 서인(西人)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기자헌은 북인이었다. 정엽과 기자헌은 구원(舊怨)이 있는 사이였다. 기자헌이 이조 좌랑 자리에 추천받았으나 정엽은 평소 그의 사람됨을 좋게 보지 않아 반대하였다. 기자헌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며 여러 번 집에 찾아왔으나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아 결국 그의 원한을 샀다.
기자헌은 익명의 투서를 받아 정엽을 공격하려고 한다. 익명의 투서가 기자헌의 자작극인지 실제 누가 작성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소식을 들은 신흠은 기자헌에게 당장 달려갔다. 기자헌은 신흠에게 투서를 보여 주려고 했지만, 신흠은 투서를 보지 않으려 했다. 투서를 보는 순간 필적 감정의 대상이 되고 진위 논쟁의 출발점이 된다. 신흠은 그것을 아예 사전에 차단했다. 그러면서 이 투서로 옥사를 일으킨 재상이 되지 말 것을 말한다. 정엽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고 기자헌의 리스크를 건드린 셈이다. “이거 터뜨리면 당신만 우스운 꼴 된다” 신흠은 정엽의 무죄를 주장하기보다 기자헌의 명예를 건드렸다.
그리고 신흠 자신이 정엽의 집에 출입하지 않음으로써 빌미를 주지 않았다. 신흠이 정엽의 집에 출입하면 투서 사건을 알려주려 했다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가 친구를 살릴 수 있었다.
신흠이 한 일은 크게 세 가지였다. 투서를 보지 않아 증거를 무력화시켰고, 기자헌의 명예를 건드려서 정엽을 해치려던 동기를 꺾었으며, 정엽의 집에 출입하지 않아 의심을 해소했다. 셋 중에 하나라도 없었다면 정엽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