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돈화(敦化): 사람의 뿌리를 두껍게 하다 1
1. 지효(至孝): 부모, 나의 뿌리이자 하늘
고려시대, 문도공(文度公) 유천우(兪千遇)에게는 보(甫, 유원적(兪元績)을 가리킴)라는 이름의 아우가 있었다.
아우 보는 권신(權臣) 김인준(金仁俊)을 제거하려는 모의를 형 유천우에게 털어놓았지만, 유천우는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윽고 거사를 실행하기도 전에 계획이 탄로 나고 말았다.
김인준이 유천우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 모의를 알고 있었소?”
유천우가 말하였다.
“알고 있었습니다.”
김인준이 말하였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으니, 분명 모의에 미리 참여한 것이다.”
유천우가 말하였다.
“고발하면 제가 죄를 면할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으나, 다만 늙으신 어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두려웠습니다.”
김인준이 말하였다.
“예전에 내 아우의 집에서 연회 할 때에 홍시(紅柿)가 나왔소. 자리에 있던 모든 손님이 그 맛을 칭찬했으나, 그대만은 홀로 먹지 않았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어머니께 가져다드리겠다’고 했소. 나는 진작부터 그대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소.”
김인준은 유천우를 죄에 연좌시키지 않았다.
유천우는 아우 유원적이 권신 김인준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실행되기도 전에 발각되었다. 유천우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우의 역모를 고변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우를 고변하지 않음으로써 늙은 어머니를 슬프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천우는 후자를 선택했다.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자신이 아우를 고발하면, 자신은 살 수 있어도 동생은 죽을 것이 뻔했다. 한 자식이 다른 자식을 고발하여 생긴 비극은 늙은 어머니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천우는 자신의 목숨보다 어머니의 평안을 택했다.
김인준은 유천우에게 아우인 유원적의 모의를 사전에 알고 있냐고 묻는다. 유천우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 유천우도 공모의 혐의로 함께 처벌받을 상황에 놓였다. 이때 김인준은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예전 연회에서 홍시를 먹지 않고 어머니께 가져 드리려 챙겼던 모습이었다. 김인준은 이 행동 하나로 유천우의 사람됨을 깨닫게 되어 용서했다. 어머니를 향한 지극한 효심이 결국 유천우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성 문경공(成文景公) 석린(石獜)의 나이 60세였을 때, 어머님도 나이가 70세를 넘으셨다. 병이 위독하여 눈을 감고 말을 하지 못한 지 여러 날이 지났으나, 약도 효험이 없었다. 공이 향을 피우고 기도하며, 슬피 울부짖다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조금 뒤 어머님이 깨어나 말씀하셨다.
“이게 무슨 소리냐?”
모시고 있던 사람이 기뻐하며 대답하였다.
“기도하는 소립니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하늘이 사람을 보내어 궤장(几杖)을 하사하며 말하기를, ‘아들의 지극한 정성이 이와 같았으니,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라.’ 하시더구나.”
병이 곧 나으셨다. 사람들이 모두 문경공의 부모를 섬기는 정성의 독실함에 감탄하였다.
전설의 고향에 나올 뻔한 이야기다. 늙은 아들 앞에서 늙은 어머니가 위독하였다.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석린은 향을 피우고 기도하며 구슬피 울었다. 소생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어머니는 돌연 깨어났다. 그러고는 꿈속에서 나왔던 사자의 말을 전했다. “아들의 정성이 이토록 지극하니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라!” 어머니는 깨어났고, 병은 씻은 듯 나았다. 아들의 지극한 효가 저승의 문턱까지 갔던 어머니를 다시 이승으로 모셔 왔다. 아들의 효심이 하늘에 닿았고, 그 은혜가 어머니를 통해 다시 내려온 것이다. 말 그대로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다.
어변갑(魚變甲, 자는 직제)이 신장(申檣)과 매우 친하여 서로 약속하였다.
“우리가 임금을 섬기며 충성을 다해서 명성을 얻게 되면, 모름지기 고향에 돌아가 늙은 부모를 봉양하자.”
집현전(集賢殿)에 들어간 뒤에는, 임금의 은혜가 거듭되어 차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항상 봉양이 늦어짐을 한스러워하며 매번 탄식하였다.
“임금을 섬길 날은 길지만, 부모님을 섬길 날은 짧다.”
허리 아래 건습증(蹇濕症)이 생기자, 즉시 사직원을 세 번이나 올려 고향의 온천으로 가서 병을 치료하고자 청하였다.
임금이 승정원에 하교하였다.
“이 사람은 끝내 꼭 써야 할 인재이나, 이미 병을 치료하겠다 하니 어찌 막겠는가? 병이 낫는 대로 곧바로 아뢰도록 하라.”
공이 창녕의 본가에 이르러 시를 지었다.
謝病歸來一室幽 병 핑계로 돌아오니 집안이 고요하네,
荒凉草樹古池頭 옛날의 연못가엔 초목들 황량하네.
若余豈避功名者 내 어찌 공명 파하는 자이겠는가마는
只爲慈親不遠遊 다만 부모 위해서 멀리 놀진 못하겠네.”
후에 신장이 여러 관직을 거쳐 참판에 이르렀는데, 공(어변갑을 가리킴)의 아들 한림 어효첨(魚孝瞻)에게 말하였다.
“나는 자네 아버지와 돌아가 부모님을 봉양하기로 남몰래 약속했는데, 자네 아버지는 결단하여 돌아갔는데, 나 혼자서 약속을 저버렸으니 매우 부끄럽네.”
찬성(贊成) 권제(權踶)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벼슬을 사양한 이는 두 사람이 있었을 뿐이니, 한성판윤 허주(許澍)와 어변갑(魚變甲)이다.”
공이 돌아가니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아우들도 무탈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을 드리며, 날마다 부모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일로 삼았다. 조정에서 그의 행실을 소중히 여겨 김해부사로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또 사간(司諫)으로 불렀으나 끝내 취임하지 않고 생을 마쳤다.
충과 효가 충돌할 때 어떤 가치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어변갑과 신장은 젊은 시절 함께 꿈을 꾸었다. 임금을 섬기다가 이름을 날리면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자고 했다. 왕은 요긴한 신하들을 떠나보낼 수 없었다. 떠나려고 할 때마다 주저앉혔다. 어변갑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답답해했다. 임금을 섬기자니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고, 부모님을 모시자니 임금을 섬길 수 없었다.
어변갑은 마침내 결단을 했다. 마침 건습증이 생기자 병 치료를 명분으로 삼아 귀향하여 부모님을 모시려 하였다. 효를 위하여 충을 저버린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어변갑은 귀향해서 부모님을 돌보았다.
신장은 끝내 벼슬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어변갑의 아들 어효첨이 벼슬하고 있었는데, 신장은 어효첨에게 자신은 벼슬에 매어 효를 실천하지 못하는 자괴감을 표시한다. 어쨌든 신장이 벼슬을 그만두지 못한 것은 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모든 입맛에 맞는 국은 없다. 누구의 입맛에 맞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입맛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권제는 자의로 벼슬을 사양한 사람은 허주와 어변갑뿐이라고 했다. 떠난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포즈와 수사다. 인간은 늘 살던 곳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못한다. 임금을 위한다는 명분도 결국 명예와 벼슬에 대한 욕망에 불과하다. 어변갑은 아무나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 관직이라는 큰 욕망을 부모님에 대한 효를 실천하기 위해 주저 없이 내던졌다.
성종 때 홍문관 정자(正字) 성희안(成希顔)이 야대(夜對, 밤에 하는 經筵)에 입시하자, 임금께서 술과 과일을 하사하셨다. 성희안이 소매에 감귤 수십 개를 넣어 두었는데, 술에 취해 넘어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매의 감귤이 땅에 떨어졌다.
다음 날, 성종께서 감귤 한 쟁반을 옥당(玉堂, 홍문관)에 내리시며 하교하셨다.
그 옛날에 효자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왕상(王祥)은 겨울에 계모가 먹고 싶다고 해 잉어를 잡으러 강으로 갔는데, 얼음이 저절로 갈라지며 잉어가 튀어나왔고, 황향(黃香)은 아버지를 봉양할 때 더우면 곧 상과 베개를 부채질하고 추우면 곧 제 몸으로 자리를 따스하게 하였다.
임금이 신하들에게 먹으라고 귤을 하사하자, 성희안은 소매 속에 몰래 감춰 놓고 가다가 술에 취해 넘어져 귤이 떨어졌다. 임금은 성희안이 어머니에게 드리려는 뜻을 알아채고는 귤을 하사했다. 이 이야기는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가 떠오른다. 삼국 시대 육적이 원술(袁術)을 뵐 때, 귤을 주니 품에 간직하므로 원술이 그 까닭을 묻자 돌아가 어머니에게 드리겠다고 대답한다. 성희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도(竊盜)를 한 셈이다.
조중봉(重峯) 조헌(趙憲)의 계모 김씨는 그를 매우 박대하였다. 하루는 공이 외가에 가서 외조모를 뵙자, 외조모가 김씨의 행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네 어머니가 너를 이처럼 대하니, 장차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겠는가?”
공은 엎드린 채 대답하지 않다가, 작별하고 돌아왔다. 몇 달 뒤 다시 외가에 문안을 드리려 갔더니, 외조모가 물었다. “넌 어째서 오랫동안 오지 않았느냐?” 공이 대답하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 외조모께서 직접 저의 어머니의 허물을 들추셨으니, 자식된 자로서 차마 들을 수가 없어서 오랫동안 감히 오지 못했습니다.” 외조모는 매우 훌륭하게 여겼고, 이후로는 감히 다시는 김씨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공이 아버지를 여읜 뒤, 김씨가 공을 더욱 엄하게 대하여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곧장 엄하게 꾸짖었다. 그러나 공은 공경하고 효도하면서, 끝내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에 이르렀다. 공이 세상을 떠나자, 김씨가 밤낮으로 통곡하며 말하였다. “이런 훌륭한 인물을, 세상에서 어찌 다시 보겠는가! 참으로 나의 아들이로다. 그 어머니는 다만 배를 빌려 낳았을 뿐이다.”
계모에 관한 긍정적인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못된 계모 이야기는 백설 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장화와 홍련, 콩쥐와 팥쥐 등 무수히 많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계모가 전래동화 속 마녀 같기만 할까? 같은 행동이라도 친모가 하면 훈육이지만 계모가 하면 학대가 될 수 있다. 친모의 강력한 기억들은 더더욱 계모를 좋은 기억으로 남기기 어렵게 만든다.
계모의 박대에 대해 외조모가 동정을 보였다. 조헌은 어머니의 허물은 자식이 차마 들을 수 없다는 원칙으로 일관한다. 조헌이 계모를 친모처럼 모시자 계모도 친모처럼 바뀌어갔다. 진정한 효도는 없던 모성(母性)까지 만들어 간다. 계모는 단지 계모였다가 배 아파 낳지는 않았지만, 가슴으로 낳은 진짜 어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