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후덕(厚德)과 박정(薄情) 사이

by 박동욱

후덕(厚德)과 박정(薄情) 사이

조정암(조광조를 가리킴) 선생이 대사헌이 되었을 때, 선생과 같은 해에 진사가 된 사람 중에 가정이 불화한 자가 있었다. 그는 아내를 내보내고자, 가까운 사람을 보내 칠거지악의 의리를 들어 선생께 와서 아뢰었다.

선생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부부는 인륜의 시작이며 만복의 근원이니, 그 관계가 지극히 중요하다. 부인의 성품이 어둡고 우둔하여 비록 실수가 있더라도, 군자 된 자는 마땅히 바름으로써 이를 대하여 그로 하여금 감화되게 하고 함께 가도(家道)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후덕(厚德)이다. 만약 모범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갑자기 아내를 내보내고자 한다면, 박정(薄情)에 가깝지 않겠는가? 하물며 이는 한 가정의 윤리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바깥사람들이 감히 참견할 바 아니다. 깊이 생각하여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칠거지악은 아내를 내쫓을 이유가 되는 일곱 가지 사항이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不順舅姑]ㆍ자식을 못 낳는 것[無子]ㆍ행실이 음탕한 것[淫行]ㆍ질투하는 것[嫉妬]ㆍ나쁜 병이 있는 것[惡疾]ㆍ말썽이 많은 것[口舌]ㆍ도둑질하는 것[盜竊] 등이다. 여기에 해당한다고 해도 무턱대고 쫓아낼 수는 없다. 칠거지악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삼불거(三不去)라 하여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면 아내를 쫓아낼 수 없었다. 첫째로 시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마쳤을 때, 둘째로 장가들 때 빈천하였으나 나중에 부귀하게 되었을 때, 셋째로 돌아갈 곳이 없을 때이다.

누군가 자기 아내가 칠거지악을 저질러 쫓아내고자 하여 대사헌인 조광조를 찾아와 의견을 물었다.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은 관료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막중한 직책이었다. 따라서 사대부의 이혼 문제 또한 단순한 가정사가 아닌, 인륜과 도덕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관여할 수 있었다. 조광조는 아내의 성품에 문제가 있더라도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을 권했다. 그러면서 아내의 문제를 감수하는 것은 후덕이지만, 아내의 문제로 내치는 것은 박정이라 하였다. 결국 부부간의 문제 해결 방식의 차이는 후덕과 박정의 차이로 나타난다.

자신의 의견은 후덕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이것은 바깥사람들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부부의 일은 당사자 외에는 알기 어려운 내밀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요즘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나 ‘이혼 숙려 캠프’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무조건 참는 후덕(厚德)만이 정답은 아니며 때로는 헤어지는 ‘박정(薄情)’이 서로를 구원하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광조는 스스로 결정하고 감당할 것을 당부한다. 그것은 각자마다 내구성이 달라서 상대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관계를 지키거나 관계를 끊는 것은 남에게 맡길 무게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매거진의 이전글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