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항아리로 이룬 가문의 화목

by 박동욱

항아리로 이룬 가문의 화목

조덕건(曺德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찍이 서리(書吏)의 역할을 맡았으며, 창의동(彰義洞)에 살면서 탁월한 품행으로 명성이 있었고, 재종(再從) 이내의 가까운 친척 수십 명과 한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는 뜰 한가운데에 작은 항아리를 묻어두고, 일가친척들 각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나 서로에게 경계를 주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곧바로 작은 종이에 적어 항아리에 넣게 하였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모두 함께 모여 항아리를 열어 그 안의 글을 꺼내 모두 펼쳐본 뒤 즉시 불태워 버렸으니,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였다. 각자 마음속으로 힘써 노력하게 하였으나, 끝내 누가 한 말인지는 알 수 없도록 하였다.

그의 선영(先塋) 아래에는 따로 제기를 마련해 두었으며, 제사를 지낼 때면 지극히 정성스럽고 공경스럽게 하였다. 지금까지도 마을의 무뢰배들조차 감히 그의 이름을 곧장 부르지 못하고 반드시 ‘덕건씨(德健氏)’라고 불렀다. 조덕건이 세상을 떠난 것은 현종(顯宗) 때였다고 한다.


수십 명의 친척이 한집에 사니 서로 간에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조덕건은 비록 신분이 서리였지만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했다. 누군가에게 불만이 생기면 불만의 내용을 적어서 항아리에 넣어두게 했다. 누구를 향해 쓴 글인지는 당사자는 알 수 있었겠지만 누가 쓴 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는 일종의 ‘조선판 대나무 숲’이자 지혜로운 ‘소원 수리함’이었다.

이러한 일을 통해 누군가를 원망할 수 없게끔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반성을 이끌어냈다. 그리고는 불태워버려서 분란의 소지를 없애고 화합을 도모했다. 마을 무뢰배들조차 그를 덕건씨라고 높여 불렀던 것은, 그가 대가족을 유지하는 탁월한 능력과 지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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