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실명보다 무거운 약속

by 박동욱

실명보다 무거운 약속

박판서(朴判書) 박서(朴遾)는 나의 선친(先君) 익헌공(翼憲公) 정태화(鄭太和)와 동갑내기 친구다. 어릴 적에 어떤 집안과 혼인을 약속하였는데, 그 처자가 위독한 병을 앓았다가 겨우 살아났으나, 두 눈이 병으로 인해 실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박공의 부친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상태였으므로, 맏형이 어머님께 다른 혼처를 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에 박공이 말하였다.

“병으로 눈이 먼 것은 하늘이 내린 운명이요, 그녀의 허물이 아닙니다. 눈먼 아내라도 함께 살 수 있지만, 신의 없이는 사람으로서 설 수 없으니, 약속을 바꿀 수 없습니다.”

맏형은 이 말을 기이하게 여기며 허락하였다. 혼례를 치를 때 신부의 눈은 실제로 멀지 않았으니, 원수 집안의 이간질이었다.



박서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과 사돈을 맺기로 약속했다. 세월이 흘러 박서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혼인을 맺은 상대 여자는 병으로 실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박서의 형은 혼인을 없었던 일로 하기를 바랐다. 상대 여자의 실명(失明)은 결혼 생활에 치명적인 귀책 사유가 될 수 있으니 혼약을 파기한다고 한들 도덕적으로 크게 비난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박서는 그녀의 실명을 허물로 보지 않고 운명으로 보았다. 그의 판단 기준은 눈앞의 실리가 아니라 신의라는 원칙과 가문 간 계약에 대한 존중이었다. 마침내 그는 혼인을 강행하였다. 막상 혼인 때 보니 신부의 눈은 멀쩡했다. 원수의 집안이 두 집안의 혼인을 방해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였다. 만약 형의 말대로 이간질에 넘어갔다면 혼인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박서의 신의가 거짓 소문을 이기고 혼인을 지켰다.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박서의 신의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 혼인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혼전까지 혼인 상대자가 얼굴을 보지도 못한 상태이니 혼약은 뜬소문 하나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었다. 따라서 맏형의 혼인 파기 주장은 당시의 합리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박서는 이러한 상식과 달리 개인의 원칙을 예외적으로 선택한 인물이다. 그의 선택은 혼약 파기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었던 ‘실명’보다 ‘운명’과 ‘허물’을 먼저 내세운다.

『속복수전서』에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하나 더 나온다. 김안국은 외동딸을 강태수(姜台壽)의 아들 강복(姜復)과 혼인시키기로 약속하였다. 뒤늦게 강복에게 병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혼인을 했다. 요즘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이야기다.

이 두 사례가 보여주는 관념은 현대의 혼인관과 뚜렷이 구분된다. 오늘날 혼인의 지속 여부는 ‘관계의 현 상태’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기준이라면, 당시 박서와 김안국의 선택은 ‘이미 맺은 약속의 무게’ 그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곧 계약 자체를 계약 이후의 상태보다 무겁게 여겼다. 신의란 나나 타인의 상태가 바뀌더라도 변치 않는 고귀한 마음 자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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