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을 깬 한 마디
관행을 깬 한 마디
고려시대 최석(崔碩)이 순천부사로 재직하다가 임기가 차서 비서랑(秘書郞)으로 중앙에 복귀하게 되었다. 당시 순천부에는 오랜 관례가 있었으니, 태수가 교체되어 떠날 때면 백성들이 반드시 말 여덟 필을 송별 선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최석이 떠나려 하자, 고을 사람들은 말 여덟 필을 가져와 그중 좋은 것을 골라가라고 청하였다. 이에 최석은 웃으며 말했다.
“말이 개경까지 무사히 갈 수만 있다면 충분하니, 어찌 좋은 것을 골라가겠나?”
집에 도착한 후 말을 돌려보내니 고을 사람들이 받지 않았다. 최석이 말하였다.
“내가 너희 고을에 있을 때 말이 새끼를 낳은 것까지 데려왔으니, 내가 욕심을 부린 꼴이다.”
그러고는 망아지까지 돌려보냈다. 이 일 이후로 말을 바치는 폐습이 없어졌다.
고을 사람들은 덕을 칭송하며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八馬碑)라 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 비석이 넘어지자 뒤에 최원우(崔元祐)가 비석을 다시 세우고 시를 지었다.
來徃昇平節序移 승평부에 오가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는데
送迎多愧奪民時 보내고 맞느라 농사철 뺏어 몹시 부끄럽네.
莫言無徳堪傳後 후세에 전할 만한 덕 없다 말하지 마소.
復起崔君八馬碑 다시 최군의 팔마비를 세웠다오.
뇌물은 은밀히 오가지만 관행은 당당히 행해진다. 관행이나 관례는 때로 법보다 더 무서울 때가 많다.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지만 관행이나 관례를 어기면 공동체에서 아예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 고을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관행이 있었다. 전임 부사가 고을을 떠날 때 감사의 뜻으로 여덟 마리의 말을 선물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백성들이 큰 비용을 들이면서도 전임 부사의 공덕을 생각하여 기꺼이 감당했으리라. 하지만 아름다운 관행도 세월이 지나면 부담스러운 폐습이 되고 만다. 부사는 으레 전출 갈 때 말을 챙겨갈 것으로 여기게 되고,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말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진심 어린 자발적 선물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낼 수밖에 없는 준조세로 변질된 것이다.
최석은 말 여덟 마리를 받고 개경에 도착한 뒤, 자신에게 있던 망아지까지 합쳐서 순천에 돌려보낸다.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 갚아준 셈이다. 폐습을 없애서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였다. 이후로 순천에서는 이런 폐습이 사라지게 되었고 백성들을 팔마비(八馬碑) 빗돌을 세워서 그를 기렸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거절이 수십 년 묵은 나쁜 시스템을 뒤바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