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꿀과 개가죽을 돌려보내다

by 박동욱

꿀과 개가죽을 돌려보내다

홍고암(洪顧菴) 순복(舜福)은 성품이 강직하고 지조가 청빈하였다. 처조부 김명록(金命錄)이 고을 수령으로 있을 때, 공이 우연히 그를 만났다. 김씨가 말하였다.

“그대는 본래 가난하거늘 어찌 물건 하나도 요구하지 않는가?”

공이 대답하였다.

“관아의 물건은 공께서도 주시지 말아야 하고, 저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김씨가 말하였다.

“말이야 옳지만 작은 송별 선물 정도가 어찌 의리상 해롭겠나?”

공이 답하였다.

“어쩔 수 없다면 꿀 다섯 홉과 개가죽 반 장이면 충분합니다.”

김씨는 곧바로 웃으며 그 물건들을 보내주었으나, 공은 집에 돌아와 이를 모두 돌려보내며 말하였다.

“개가죽은 안장이 찢어질까 염려하여 수선용으로 받았고, 꿀은 먼 길에 더위를 먹었을 때를 약으로 쓰려고 대비해 둔 것이었습니다. 이제 두 가지 걱정이 사라졌으니, 이를 남겨둔다는 것은 의리에 어긋나므로 돌려보냅니다.”

비록 작은 일이나, 그 지조를 볼 수 있다.



홍순복은 관가의 물건은 상대가 주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받지도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물건을 권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처조부다. 딱 잘라 거절하면 어른을 무안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가장 하찮은 선물을 요구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비상시에 쓰려고 받았으나 무사히 왔으니 필요 없다”는 명분을 만들어 되돌려 주었다. 상대의 호의와 자신의 원칙을 모두 지킨 고품격의 거절이다.

이와 비슷한 정붕(鄭鵬)의 일화가 있다. 그가 청송 부사로 있을 때 친구이자 재상인 성희안(成希顔)이 편지를 보내 잣과 꿀을 부탁했다. 친구 사이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소한 부탁이었지만, 정붕의 답장은 단호하고 서늘했다. “잣은 높은 산봉우리에, 꿀은 백성의 벌통 속에 있으니, 태수 된 자가 어찌 이를 구할 수 있겠소?” 잣을 따려면 백성들이 높은 산에 올라야 하고 꿀은 채취하려면 백성들의 벌통을 뒤져야 한다. 부사가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백성을 고달프게 할 수는 없다는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성희안은 이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홍순복과 정붕의 거절은 매정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름다운 원칙을 지킨 것이다. 홍순복이 돌려보낸 물건을 다시 받은 김명록도, 정붕이 보낸 편지에 사과의 말을 전한 성희안도 훌륭하다. 단호한 거절이 아름다운 관계로 복원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