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새는 집의 호사
비 새는 집의 호사
이판서(李判書) 희검(希儉)이 만년에 동문 밖에서 살며 호를 동고(東皐)라 하였으니, 곧 하정(夏亭) 유상공(柳相公) 관(寬)의 옛집이었다. 하정 유관은 이름난 청백리로서 지붕이 새어도 고치지 않고 비 오면 우산을 받치며 살아, 사람들이 그의 청렴함을 아름답게 여겼다. 공은 그 집의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키며 비가 새지 않을 정도로 약간 수리만 하였다.
손님이 그 초라함을 비웃자, 공은 “우산을 받치던 것에 비하면 호화롭다”라고 답하였다.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옷은 몸 가릴 정도, 음식은 배 채울 정도로만 하였다. 끼니가 자주 떨어져도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결국 죽은 뒤에는 염할 옷도, 장사 지낼 곡식과 비단도 없어 친척에게 빌려야 했다.
청백리로 유명했던 유관의 옛집에 이희검이 들어와 살았다. 유관은 지붕이 새는 채로 우산을 받치며 살았고 이희검은 무너진 곳만 약간 수리한 채 살았다. 누군가 이희검의 초라한 집을 비웃기라도 할라치면 “우산 받치고 살던 때보다 호화롭지 않소?”하고 답했다. 그는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나, 옷이나 음식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죽하면 죽은 뒤에도 장사 지낼 일체의 것을 친척에게 빌려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질적 빈곤을 정신적 풍요로 이겨낸 한평생을 살았다. 이희검은 낡은 옛집에서 산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서린 청백리 정신을 함께 누린 것이다. 아름다운 정신의 기막힌 동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