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의 쌀은 먹지 않는다
간신의 쌀은 먹지 않는다
정교리(鄭校理) 붕(鵬)은 선산 사람이다. 청렴한 절개로 스스로 단속하니 그의 문 앞에는 뇌물 보따리가 뚝 끊겼다. 당시 유자광(柳子光)은 적개좌리공신(敵愾佐理功臣)으로 무령군(武靈君)에 봉해졌다. 그런데 간사하고 탐욕스러워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니 그 기세가 조정을 기울게 할 정도였다.
공은 유자광과 인척간이어서 비록 문안 인사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러나 여종을 보낼 때마다 반드시 삼끈으로 팔을 단단히 묶고 표시를 한 뒤 보냈다가, 돌아오면 풀어주었다. 이는 고통을 느껴 빨리 갔다가 빨리 오게 하여 그 집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공이 입직을 섰는데 집안에 양식이 떨어지자, 공의 부인이 유자광 집에 양식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유자광이 기쁜 듯 말하였다. “친척의 정의(情誼)는 서로 구휼하는 데 있다. 교리께서 지나치게 고집이 세지만 내가 어찌 냉담하겠는가?” 하고는 곧바로 쌀은 자루에 넣고, 장은 항아리에 담아, 종에게 시켜 노새에 실려 보내주었다.
공이 직소(直所)에서 나와 윤기 흐르는 흰 쌀밥을 보고 어디서 얻었는지 물었다. 부인이 사실대로 알리자 공은 밥상을 물리치고 웃으며 일어나 말했다.
“입직하던 날 아침에 비지를 사다 죽을 쑤어 주기에, 내가 양식이 떨어진 줄 알았소. 그런데도 내가 조치하지 않았으니 이는 나의 실수이지, 집사람의 허물이 아니오.”
드디어 친구들에게 편지를 띄워 사용한 만큼을 빌려 채운 뒤, 원래 받은 쌀과 함께 돌려보냈다. 가난 속에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정붕(鄭鵬)과 유자광(柳子光)은 완전히 성품이 달랐지만, 인척이기에 인사를 나눌 정도의 관계는 유지하였다. 하지만 정붕은 여종을 유자광의 집에 보낼 때는 팔을 꽉 묶어서 봉인까지 했다. 종이 아픔을 느껴서라도 유자광의 집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유자광과는 말도 섞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정붕의 집에 양식이 떨어지자 아내가 정붕 모르게 유자광에게 양식을 빌렸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정붕은 몹시 불쾌했지만, 아내를 탓하기보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빌려서라도 쓴 만큼의 쌀을 채워 유자광에게 곧바로 돌려보냈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을 식구(食口)라 한다. 선비에게 더러운 곡식을 먹는다는 것은 곧 불의에 타협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였다. 안응세(安應世)도 평생토록 불의한 곡식은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깨끗한 몸을 더러운 곡식으로 더럽힐 수 없다고 했다. 굶주릴지언정 간신의 쌀로 배를 채울 수 없다는 서릿발 같은 기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