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by 박동욱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임소암(任踈菴) 숙영(叔英)이 을묘년(1615)에 삭탈관직 되어 봉안역(奉安驛)에 살 때, 미음과 죽으로 간신히 연명하였다. 어떤 사람이 장난삼아 말하였다. “그대는 참으로 신선이로소이다. 먹지 않고도 죽지 않으니” 기미년(1619)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올해는 그대의 목숨이 반드시 위태로울 텐데, 어찌 근심하는 기색이 없으십니까?” 공은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이미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소. 죽으면 반드시 아귀(餓鬼)가 될 터인데, 만약 다시 근심하면 수귀(愁鬼)가 되고 말 것이오. 귀신 하나가 두 가지 역할을 맡을 수는 없기에 근심하지 않는 것이오.”

정립(鄭岦)은 공과 평소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무오년(1618)에 관동 지방에 관찰사로 나갔을 때 공의 집에 들러 묵게 되었는데, 공이 조밥을 먹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선생께서 만약 종이 몇 묶음을 저에게 보내주시면, 마땅히 환산하여 장부에 기록한 뒤, 종잇값에 해당하는 쌀을 받아 보내주겠소. 그러면 선생도 쌀밥을 드실 수 있을 것이오.” 공이 말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방납(防納)이라고 하는 것이오?” 정립이 답하였다. “이것은 관청의 종잇값일 뿐이오. 사대부들이 모두 받기를 청하는 것이니, 그대도 꺼리지 마시오.” 이에 공이 정색하며 말하였다. “종이를 조금 들이고 쌀을 후하게 받는다면, 이것이 방납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옛 친구와 오래 떨어져 있다가 서로 만나게 되어 마음이 기쁜데, 어쩌자고 이런 일을 가지고 나에게 권한단 말이오?” 정립은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임숙영은 죽으로 연명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몇 해 뒤에 큰 기근까지 들었는데도 그에게 근심하는 기색이 없자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그 까닭을 물었다. 임숙영은 굶어 죽는 아귀(餓鬼)의 운명이니 굶어 죽을 처지를 근심하는 수귀(愁鬼)까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어차피 굶어 죽을 운명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있다가 죽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러한 마음은 기근 바로 한 해 전 정립과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정립은 임숙영과 이물 없는 사이여서 그의 딱한 처지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감영(監營)에 여러 고을에서 종이를 공급하는데, 그 종잇값이 시장 가격의 몇 배나 쳐주니 종이 몇 묶음을 보내주면 그것으로 행정 처리를 하여 쌀밥을 먹게끔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임숙영은 이런 제안이 방납에 해당한다고 꼬집는다. 방납은 공납 대신 돈이나 물품을 납부하는 제도였으나, 중간 상인들이 개입해 백성을 착취하는 폐단이 심했다. 정립의 제안은 그 편법을 이용해 친구를 도우려던 것이었다. 임숙영은 친구의 호의를 거절하면서 방납제도의 폐단과 이 편법을 동시에 비판한 셈이다. 양반은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 당당하지 못하게 배를 채우느니 차라리 당당한 아사(餓死)를 선택하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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