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의 부끄러움, 검소의 위엄
사치의 부끄러움, 검소의 위엄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성우상(成右相) 세창(世昌)이 함께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할 때였다. 두 사람이 함께 숙직하게 되었는데, 성세창은 본래 부잣집 출신으로 이불과 베개를 모두 명주로 만들어 극도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반면 김안국은 본래 빈궁하고 성품도 사치를 좋아하지 않아 베 이불과 나무 베개를 사용하니,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
성공이 몹시 부끄러워하며 밤새 편히 잠들지 못했다. 날이 밝자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말했다.
“김안국이 만약 내 사치를 비웃었다면 내가 이처럼 부끄러워하겠소”
이에 급히 검소한 물건으로 바꾸라고 명한 뒤에야 감히 함께 잠을 잤다고 한다.
사가독서(賜暇讀書)는 당대 최고의 인재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고 그 경비 일체를 나라에서 부담한 제도다. 한 번에 선발되는 인원은 보통 6인 내외였으며, 많을 때는 12인까지, 적을 때는 1인만 뽑힌 때도 있었다. 대단한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김안국과 성세창은 함께 뽑힌 동료였으나 생활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성세창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이불과 베개가 모두 명주로 만든 것을 썼다. 그런데 김안국은 가난한데다 검소하여 베 이불과 나무 베개를 사용했다.
만약 김안국이 어쭙잖은 충고를 성세창에게 했다면 오히려 반발심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김안국은 그저 당당히 자신의 침구를 사용했고, 성세창은 김안국의 침구를 보고서 호사를 누린 것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검소한 침구류로 교체했다.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말했다. “김안국이 나를 비웃었다면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오.” 평소 검소한 태도를 보인 김안국도 대단하지만, 그의 소박한 물건을 보고 스스로 각성한 성세창도 훌륭하다.
진정한 명품은 옷이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사람의 격조였다. 허조(許稠) 또한 그러했다. 세종 때 사대부들이 모두 화려한 황색 옷을 입을 때, 그는 홀로 검소한 회색 답호(褡�, 벼슬아치가 입는 옷의 한 가지로, 예복(禮服) 밑에 입는 조끼형이며 밑이 긴 옷)를 고집했다.
옷뿐만이 아니다. 손순효(孫舜孝)는 높은 벼슬에 올랐음에도 손님이 오면 검은콩, 씀바귀, 솔잎 같은 소박한 반찬을 내놓았다. 그는 자식들에게 “우리 집은 초야에서 일어났으니 대대로 전해 내려온 옛 물건은 없다. 다만 청렴하고 결백한 것을 전해주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김안국의 베 이불, 허조의 회색 옷, 손순효의 소박한 반찬은 가난의 증거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그 사람을 명품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고 아무리 좋은 음식도 그 사람을 고상하게 만들 수는 없다. 사람은 좋은 물건을 걸침으로써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비로소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