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열 가지
내가 가진 열 가지
김사재(金思齋) 정국(正國)이 황 아무개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집 짓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말을 내가 서울에서 들었소. 만약 남들의 말과 같다면, 차라리 그만두고 고요하게 살면서 천명을 따르는 것이 나을 것이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이 일흔을 상수(上壽)라 하니, 만일 나와 그대가 상수를 누린다 하더라도 남은 시간은 불과 십여 년 남짓인데. 어찌 마음을 수고롭게 하며 수다쟁이들의 꾸짖음을 자초하는 것이오?
나는 지난 20년 동안 빈곤하게 살면서, 집 몇 칸을 두어 밭 몇 이랑을 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각각 몇 벌씩 두었소. 그러나 눕고서도 남은 땅이 있고, 옷을 입고서도 여벌 옷이 있었으며, 밥그릇 밑에 남은 밥이 있었소. 이 세 가지 남은 것을 가지고 한세상을 편히 살았소. 비록 넓은 집 천 칸, 옥 같은 곡식 만 섬, 아름다운 비단옷 백 벌이 있다 하더라도, 썩은 쥐나 다름없이 여기며, 오히려 여유있게 이 한 몸을 살아가며 넉넉함을 느꼈소.
그대의 의식주가 나보다 백 배는 낫다 들었는데, 어찌 다시 그칠 줄 모르고 쓸모없는 물건을 모으는 것이오? 오로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곤,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친구 서너 명,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바람 통할 창 하나, 등을 대고 따뜻하게 할 기둥 하나, 차 달이는 화로 하나, 늙은 몸을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를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일 뿐이오. 이 열 가지는 비록 번거롭더라도 하나도 빠뜨릴 수 없나니, 늘그막을 보내는 데 이보다 더 무엇을 구하겠소?”
나이 일흔이 넘어서 집을 짓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집 짓는데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느냐는 힐난이다. 그에게 대저택과 산해진미는 썩은 쥐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담담히 자신의 삶을 말해준다.
삼여(三餘)는 공간, 의복, 식량의 여유다. 누군가에게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는 여기에서 여유를 느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부족한 사람이 있고, 조금 가져도 풍족한 사람이 있다. 여유는 소유의 정도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다.
그가 가지고 있는 10가지를 소개한다. 이것은 소유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소유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사람은 살면서 꼭 요긴한 몇 가지 물건만 있으면 된다. 물건을 하나 더 소유하는 것은 집착하고 신경 쓸 일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리즘은 탁월한 삶의 자세다. 빈 공간을 넓힘으로써 정신은 풍성해진다.
상진(尙震)은 고관이 된 후에도 일부러 재산을 모으지 않았다. 창고가 점차 기울어 무너지자, 종이 수리할 것을 건의했다. 그는 “고쳐본들 저 큰 창고를 무엇으로 채우겠느냐?”라며 거절했고, 결국 창고는 무너져 사라졌다. 창고도 사라지면서 그의 집착도 따라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어쩌면 한평생 부질없는 것을 채우느라, 정작 소중한 인생을 소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