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5) 원칙(原則) — 흔들리지 않는 내면

by 박동욱

5) 원칙(原則) — 흔들리지 않는 내면

고려의 주문절(朱文節) 열(悅)은 얼굴이 못생기고 코는 썩은 귤과 같았다. 안평공주가 처음 고려에 도착해서 여러 신하와 연회를 베풀 때, 공이 일어나 축수를 올리자, 공주가 왕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늙고 추악한 귀신을 제 앞에 가까이 오게 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용모는 귀신처럼 못났어도, 마음씨는 물처럼 깨끗하오.”

공주가 이 말에 안색을 고치며 그를 공경하는 예로 대하였다.



안평공주는 원나라 세조의 딸로, 고려 충렬왕에게 시집온 왕비다. 낯선 땅에 처음 도착해 신하들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다. 주열은 어찌나 못생겼는지 늙은 추악한 귀신을 쏙 닮아 있었다. 오죽하면 공주가 놀라 이런 사람을 제 앞에 서게 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왕은 주열이 용모는 못생겼지만, 마음만은 비단결 같다고 말한다.

미녀와 야수나 슈렉은 모두 못생긴 이의 아름다운 내면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진정한 안목은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생긴 것이 인성이나 실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실생활에서 이런 우를 쉽게 범한다. 공주는 왕의 말을 듣고 깨우친 바가 있게 되었다. 보이는 모습에 놀랐지만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성종은 당대의 인물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데 수완이 매우 뛰어났다.

하루는 성종이 후원을 산보할 때, 솔개가 우연히 종이 한 장을 물고가다가 임금 앞에 떨어뜨렸다. 임금이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바닷가의 수령이 좌승지에게 선물로 보낸 물품 목록이었다.

임금께서 그 종이를 소매에 넣고 경연에 나아가 여섯 승지를 불러 조용히 물었다.

“만약 지방 수령이 그대들에게 먹을 것을 선물로 보낸다면, 예의도 따지지 않고 편안하게 받을 수 있겠느냐?”

여섯번째 앉은 동부승지가 대답하였다.

“어찌 감히 받겠습니까?”

네 번째 다섯번째 앉은 승지도 차례대로 같은 소리로 대답하여 마치 한 입에서 나온 듯했다.

다만 두 번째 앉은 좌승지만은 자리를 피하여 물러가서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신은 그렇지 못합니다. 신에게는 아흔 살 노모가 계십니다. 어제 평소 친분이 두터운 한 수령이 해산물을 선물로 보내왔기에 신이 받았습니다.”

임금께서 웃으시며 소매에서 그 종이를 꺼내 보이시며 말하였다.

“경은 진실로 옛날 정직한 사람의 유풍을 지녔다고 이를만하다”



성종은 솔개가 떨어뜨린 종이 덕분에 좌승지가 수령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임금이 질문을 던진 것은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신하들의 진심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다섯 명의 승지는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한다. 그러나 좌승지만은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90세 노모를 위한 것이었음을 솔직히 밝혔다. 성종은 입에 발린 거짓말쟁이보다, 비록 허물이 있을지언정 솔직한 사람을 높이 평가했다.

성종이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흠결 하나 없는 청렴이 아니라, 자신의 원칙과 상황을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용기였다. 번드르르한 말과 공손한 낯빛으로 윗사람을 속이는 사람보다, 사실을 사실대로 고하는 투박한 사람이 훨씬 쓸모가 있다.






조중봉(趙重蜂) 헌(憲)이 전라도사(全羅都事)로 재임하셨을 때, 정상국(鄭相國) 철(澈)이 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정상국은 술을 즐겨 마셨는데, 조공이 매번 심하게 책망하였으나, 정상국은 고치지 못하였다.

조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수령들이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음식을 잘 차려서 윗사람에게 아첨하고, 감사(監司)가 된 자는 백성의 기쁨과 걱정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술을 마시기만 일삼으니, 이것이 어찌 백성의 피를 마시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정상국이 순행 길에 강진현에 이르러, 조공과 함께 청조루(聽潮樓) 위에 앉았는데, 손님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정상국이 술잔을 들어 조공에게 권하며 말하였다.

“오늘은 마셔도 좋을 터인데, 공은 어찌 그리 고집스러우시오?”

조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술이 나오자, 조공이 손으로 밀쳐내며 말하였다.

“어찌 이 백성의 피를 마실 수 있겠소?”

끝내 입술을 적시지 않으셨다.




정철은 문학사에서는 「관동별곡」의 작가로 기억되지만, 정치사에서는 기축옥사의 중심인물로 기록된다. 그는 애주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정철 본인도 음주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는지 「술을 경계하는 글[戒酒文]」을 쓰기도 했다.

정철과 조헌은 같은 서인이었다. 정철은 조헌보다 8살이나 많은 직속상관이었다. 그러나 조헌은 상급자이며 연장자인 정철의 술버릇을 꾸짖었다. 술을 마시느라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백성들의 피를 마시는 것과 같다는 서늘한 일갈이었다. 뒤에 정철이 강진에 이르러 여러 사람 앞에서 술을 권했다. 그러나 조헌은 스스로 한 말을 지키며 끝내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옛사람들은 이처럼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했다. 유관(柳觀)은 “친구 사이에는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했다. 거절당하면 섭섭하고, 못 빌려주면 미안해져 우정이 상하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은 꿩을 두 마리를 선물 받자 한 마리는 정중히 받고 다른 한 마리는 돌려보냈다. 호의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욕심을 경계한 것이다.

세 사람의 일화는 아름다운 원칙에 대해 말해준다. 순간의 이익이나 분위기보다 내면의 원칙을 더 소중히 여긴 태도다. 원칙을 지키면 융통성이 없다는 비난을 들을지언정, 인생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절대 훼손될 수 없는 원칙 하나를 세워서 평생 지켜가는 것, 그것은 어렵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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