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

붓통 속의 답안지를 거부하다

by 박동욱

붓통 속의 답안지를 거부하다

조용주(趙龍州) 경(絅)은 이이첨(李爾瞻)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을 때, 비록 인척 관계로 친분이 있었으나 항상 향기와 악취의 구별이 있었다. 당시 조경은 아직 벼슬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느 날 이이첨이 갑자기 찾아와 말했다. “그대가 이토록 초라한 처지인데, 어찌 청운의 뜻이 없단 말인가?”

조용주가 답하였다.

“진흙탕에서 벗어나 조정에 올라가는 것이 어찌 선비의 큰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곤궁한 선비로서 스스로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이이첨이 웃으며 말했다.

“다만 원하지 않았을 분이지, 진실로 원했다면 어찌 이루지 못한 것을 근심하겠소?”

이내 일어나 떠났다. 얼마 후, 조정에서 특별히 과거 시험을 열어 선비를 뽑았는데, 이는 이이첨이 꾸민 일이었다. 이이첨이 사람을 시켜 조경에게 붓 한 자루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잠시 과거 시험장에서 쓰도록 하시오.”

붓을 꺼내서 보니 붓대만 있고 붓털은 없었다. 이상히 여겨 붓대 안을 들여다보니 쪽지에다 작은 글씨로 쓴 시험 내용이 적힌 문서 한 장이 있었다. 조경은 매우 놀라 그날로 하인을 고용하고 말을 빌려 포천(抱川)으로 돌아가, 더는 벼슬길에 나설 마음을 접었다. 이후 이이첨이 종종 선물을 보내며 안부를 물었으나, 조경은 일절 답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조경에게 다녀온 뒤, 이이첨이 물었다.

“조 아무개의 당에 거는 편액은 무어라 했소?”

그가 말했다.

“육송(六松)이옵니다.”

이이첨이 말했다.

“이는 나를 죽이려는 뜻이로다.”

육(六)은 륙(戮)과 발음이 같고, 송(松)은 이이첨의 어린 시절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인조반정 이후 조경은 과거에 급제했다.



이이첨과 조경은 인척 관계였다. 이이첨은 광해군의 즉위 이후 대북의 영수가 되어 정국을 주도했다. 대북 세력을 강화하며 소북 일파 숙청, 영창대군 서인 강등과 사사, 인목대비 유폐 등의 패악을 저질렀다. 이이첨은 조경을 자신의 일파에 포섭하려고 했고, 조경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이이첨은 조경을 염두에 두고 과거 시험을 특별히 개최했고, 남몰래 시험 문제를 조경에게 전달했다. 조경은 원래부터 이이첨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러한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완전한 결별을 결심했다. 시험은 치르지 않았고 벼슬길에 오를 뜻도 접었다. 그 후 이이첨이 여러 번 연락을 해왔지만 답하지 않았다. 육송이란 당호(堂號) 풀이는 다소 과도한 감이 없지 않으나, 그만큼 이이첨도 조경이 자신을 경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이이첨은 가족을 이끌고 도망가던 중 광주의 이보현(利甫峴)을 넘다가 관군에게 잡혀 참형되었다. 조경은 인조반정 이후 세상이 바뀌자 그제야 과거 시험을 보았다. 만약 이이첨이 깔아 준 판에 올라 시험에 합격했다면 이이첨의 공범이 되어, 인조반정 때 같은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성공을 위해 변절이나 협잡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원칙을 포기하고 얻는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다른 이름이다.

이러한 사례는 의원 김유위(金由謂)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의술로 이름이 높아 권세가들의 집을 드나들며 재물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권세가들의 집에 출입하는 것을 중단했다. 권세가가 몰락하면 그 뒷수습을 하느라 전에 얻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장의 혜택보다 훗날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크다는 계산이다. 조경이 ‘도덕적 원칙’으로 거절했다면 김유위는 ‘냉정한 계산’으로 거리를 두었다. 조경과 김유위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으며, 부정한 이득은 반드시 징벌적 이자를 쳐서 갚아야 한다는 진리를 꿰뚫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조선의 스무 가지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