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붙인 글 39

–조선의 좌우명-

by 박동욱

촛불로 어둠을 밝히리라


내가 경인(庚寅)년에 밝은 시대에 죄를 입어서 멀리 유배가게 되었다. 문을 닫고서 허물을 반성하는 여가에 옛 학업을 찾아 다스렸다. 일과로 주자(朱子)의 글을 읽으니 때때로 마음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있었으니, 갇혀 있는 고통을 잊기에 충분하였다. 또 함께 책을 읽는 두 세 사람들과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의 도리와 고금(古今)에 거친 현명함과 사악함의 자취를 강구(講究)하여 밝히니 대개 서로 돕는 이익이 없지 않아서 더욱 의리가 무궁하여 하루해가 질 때까지 하여도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드디어 노학잠이라는 한 편의 글을 지어서 배우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인하여 또 스스로 일깨우노라.

사광이 말하였다.

“어려서 배우는 것은 해가 막 떠오르는 것 같고, 장성해서 배우는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으며, 늙어서 배우는 것은 밤에 촛불을 켜는 것과 같다.”

어려서나 장성해서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미 늙어서 배운다고 너무 늦었다 말하지 말라. 촛불로 밤을 비추더라도 어둠이 밝아지지 않음이 없고, 촛불이 그대로 있다면 낮에까지 이어질 수 있도다. 햇빛과 촛불이 비록 다르다지만 그 밝은 것은 똑같도다. 그 밝음은 똑같지만 그 맛은 나이 들수록 참되도다. 그래서 위(衛)나라 무공은 90세에 시를 지어 늙을수록 더욱 독실해졌으니 그가 오직 나의 스승이라네.


余以庚寅之歲, 得罪明時, 禦魅窮荒. 閉戶省愆之暇, 尋理舊業. 課讀朱書, 時有會心處, 足忘羈囚之苦. 且與二三伴讀之人, 講明君臣父子之倫, 古今賢邪之迹, 槩不無相長之益, 愈覺義理之無窮, 日力之不足. 遂作老學箴一篇, 以示學者, 仍又自警云.

師曠有言, “幼而學之, 如日初昇, 壯而學之, 如日中天, 老而學之, 如夜秉燭.” 幼壯之學, 無以尙已, 旣老且學, 毋曰晚矣. 以燭照夜, 無暗不明, 燭之不已, 可以繼暘. 暘燭雖殊, 其明則均. 其明則均, 其味愈眞. 所以衛武, 九十作詩, 老而冞篤, 其惟我師.

정호(鄭澔, 1648∼1736), 「老學箴 幷序」




[평설]

이 글은 1710년 그의 나이 63세 때 지은 것이다. 그는 이때 당론(黨論)을 일삼는다는 죄목으로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 있으면 답답하고 절망스럽기도 하겠지만, 반대급부로 자신을 바라볼 시간은 더 많아지게 된다. 보통 유배지에서 쓴 글을 보면 자탄(自歎)과 반성(反省)이 주를 이루지만 이 글은 작가의 굳은 결의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 “그것을 어디에 쓰려고 배우느냐”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자주 한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럭저럭 살라는 뜻이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데, 특히 공부에는 더더욱 그때가 중요하다. 그래서 사광(師曠)은 늙어서 배우는 것을 촛불을 켜는 것에 비유했으니 공부를 하더라도 성과가 미미하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촛불이 햇빛보다 밝지는 않지만 밝은 것은 똑같고 그 맛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참되다 했다. 인생을 오래 살아서 쌓여진 경험은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 어디 공부가 꼭 젊은 사람의 전유물이겠는가. 심리학자인 위너 세케이 박사는 사람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지능이 10단위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니, 이 글의 주장이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없지 않은 셈이다.

[어석]


* 사광(師曠):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음악가로, 소리를 들으면 잘 분별하여 길흉(吉凶)을 점쳤음.

* 위무공(衛武公): 춘추시대의 제후. 90세에 더욱 덕을 닦아서 「억(抑)」이라는 시를 지어 경계하였는데, 『시경』에 들어 있다.


정호(鄭澔).jpg 정호(鄭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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