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치욕을 멀리하는 법
선비가 멀리하고자 하는 것이 치욕이기는 하나, 치욕을 참으로 아는 이는 드물다. 하류에 처하는 것이 큰 욕됨이 되고, 다른 사람만 같지 못한 것은 깊은 수치가 되니, 몸을 고원한 곳에 둔다면 치욕이 저절로 이르지 못할 것이다. 먼 데를 가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고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니, 어찌 먼저 홀로 있을 때 독실하지 않으랴. 편안함만 생각하면 타락하기가 쉽고, 풍속만 쫓다보면 비루한 데에 빠진다. 마음을 보존하여 성품을 기르면 덕이 날로 높아지고 남보다 열 배 노력하면 학문은 날로 진척이 있을 것이다. 오직 노력해서 알고 힘써 행해야만 혹 이 교훈에 가까워질 것이다.
士之所欲遠者恥辱, 眞知恥辱者鮮矣. 居下流爲大辱, 不若人爲深恥, 置身高遠者, 恥辱無自以至. 行遠升高, 必自卑近, 則盍先慥慥於幽隱. 懷安則易以頹墮, 同俗則流於鄙吝. 存心養性則德日尊, 人十己百則學日進. 惟困知而勉行, 或庶幾於斯訓.
-이항복(李恒福, 1556~1618), 「恥辱箴」-
[평설]
선비가 치욕을 가장 피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치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저자는 치욕을 부끄러움[恥]과 욕됨[辱]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부끄러움[恥]이란 하류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논어』「자장(子張)」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는 욕됨[辱]에 대해서 손가락이 남만 갚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맹자』「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치욕을 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고원(高遠)한 곳에 놓거나 지향하게 하면 저절로 치욕은 멀어질 수 있다. 하찮은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하찮은 삶을 살 수 밖에 벗지만 고원(高遠)한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그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고원한 데에 뜻을 두었다면 혼자 있을 때 독실한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편안함만 생각하면 타락하기 십상이고, 세상의 유행만 따르다보면 비루한 데 빠지기 마련이다. 그런 뒤에 인격도야와 노력을 통하면 학문에 진척이 없을 리 없다.
요즘은 너무 성공과 성취 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치욕과 같은 망신을 당하지 않는 삶도 훌륭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조금은 도달하기 힘든 높은 경지에 위치해 놓고 그것을 목적으로 살다보면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해도 적어도 망신은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어석]
* 하류에 처하는 것:『논어』「자장(子張)」에 “주왕의 악행이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모든 오명(汚名)이 그에게 모여들고 말았다. 그래서 군자는 하류에 처하는 것을 싫어하나니, 천하의 악이 모두 그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라는 말이 나온다.
* 다른 사람만 같지 못한 것: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지금 어떤 사람의 무명지가 굽어 펴지지 않는다고 할 때, 그것이 아프거나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데도, 만약 그 무명지를 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진(秦)나라나 초(楚)나라까지의 먼 길도 마다 않고 가는 것은 손가락이 남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남과 같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줄 알면서 마음이 남과 같지 않은 것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니, 이를 일러 경중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今有無名之指屈而不信, 非疾痛害事也, 如有能信之者, 則不遠秦楚之路, 爲指之不若人也. 指不若人, 則知惡之; 心不若人, 則不知惡, 此之謂不知類也.]”라는 말에서 따온 말이다.
* 먼 데를∼가까운 곳: 《중용장구》 제15장에 “군자의 도는 비유하면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하며, 높은 데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하는 것과 같다.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하였다.
* 마음을 보존하여 성품을 기르면: 《맹자》 〈진심〉에 나온다.
* 남보다 열 배 노력하면: 《중용장구》에 나온다.
* 노력해서 알고 힘써 행해야만: 《중용장구》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