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벽에도 귀가 있다
[1]
아는 사람 없다고 이르지 말지니, 귀신이 여기에 있네. 듣는 사람 없다고 이르지 말지니, 귀가 담장에 붙어있네. 하루아침의 분노가 평생토록 흠이 되기도 하고, 한 오리의 이익이 평생동안 누가 되기도 하네. 남들과 서로 간섭하면 한갓 다툼만 일어날 뿐 이니, 내 마음 평안하게 하면 자연히 아무 일도 없게 된다네.
勿謂無知, 神鬼在茲. 勿謂無聞, 耳屬于垣. 一朝之忿, 平生成釁, 一毫之利, 平生爲累. 與物相干, 徒起爭端. 平吾心地, 自然無事.
[2]
사람이 천자와 정승도 부러워하지 않아야 비로소 천자와 정승의 자리 줄 만 하네. 선비가 진실로 한 푼의 은자를 아낀다면 곧 한 푼의 은자 값도 못되는 것이네.
人不慕萬乘卿相, 方可付萬乘卿相. 士苟愛一分銀子, 便不直一分銀子.
권필(權韠, 1569~1612), 「自警箴二首」
[평설]
세상은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귀신은 어디선가 보고 있고 담장에도 귀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말과 행동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성질을 내는 것만으로 흠집이 남기도 하고, 한번 이익을 탐하는 일로도 나쁜 꼬리표가 따라 다니기도 한다. 나는 한 번의 실수였다지만 세상은 나를 그것으로만 기억하는 법이다. 남과 일로 얽히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툼이 일어나니, 관계를 단순화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아무 일도 생길 턱이 없다.
세상 일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있다 보면 때가 무르익어 내 자리도 생긴다. 열심히 살았던 보상은 그 자리에 대한 열망과 상관없이 조용히 찾아온다. 따지고 보면 남에게 인색한 것만큼 손해 보는 일도 없다. 남에게 돈이든 마음이든 아끼는 사람에게 남들도 똑같이 갚아준다. 인색함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꽁꽁 닫게 만든다.
권필은 구구절절 옳은 말을 써서 경계로 담았다. 그러나 그의 말로(末路)는 처세에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글을 보면 그가 한 선택이 어리석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결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석]
귀가 담에 붙어있다.[耳屬于垣]:『시경』, ‘소반(小弁)’에 “군자(君子)는 쉽게 남의 말을 하지 말라. 담에도 귀가 붙었다[君子無易由言 耳屬于垣].”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