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진짜 어리석음
안자(顔子)가 공자를 모실 적에는 단비가 사물을 적시는 것 같아서 선생님의 음성과 낯빛을 빌리지 않아도 모든 변화가 저절로 이루어졌다. 지금 한 사람이 선생을 따라서 배우고 있는데 물어 보아도 살펴보지 않고, 가르쳐 주어도 따르지 않네. 느긋하게 스스로 옳게 여기니 안자의 어리석음과 같이 하는데, 스스로 반성하면 양심에 거리끼는 일 많이 있을 텐데 어찌 그리도 뻔뻔하던가. 이런 사람을 일러서 진짜 어리석은 이라 하나니, 마침내 만족하게 여기네. 내가 이 잠언을 써서 한편으로는 삼가하고 한편으로는 경계한다.
顔子侍夫子, 如時雨澤物, 不假聲色, 萬化自發. 今有一人, 從先生遊, 問之不審, 誨之不猶. 虛徐自是, 如顏子愚. 自省多疚, 豈有若無. 是謂眞愚, 終然泄泄. 我用是箴, 一欽一戒.
-이자(李耔, 1480~1533),「如愚箴」
[평설]
어리석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실제로 어리석어 요령부득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리석은 듯 보이지만, 진중하게 행동하여 겉으로만 어리석은 듯 보이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이 글의 대상 인물에 해당하고, 후자의 경우는 안자에 해당한다. 안자의 어리석음이야 공자가 칭찬했던 부분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말할 적에 질문하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듯하더니, 물러간 뒤에 혼자 있을 때를 살펴보건대 충분히 내 말을 발명함이 있으니, 회가 어리석지 않도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하였다.『論語』, 「爲政」편에 나온다. 골치 덩어리인 제자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다.
[어석]
설설(泄泄): 한산(閑散)하여 자득(自得)한 모습. 화락한 모습. 『시경』·「위풍(魏風)」· ‘십무지간(十畝之間)’에, “열 이랑의 바깥에서, 뽕 잎 따는 사람이여! 그대와 함께 가리라(十畝之外兮, 桑者泄泄兮, 行與子逝)”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