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떤 사람이 물었다.
“주부(主簿)는 현령(縣令)을 보좌하는 자입니다. 주부가 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현령이 혹시 따라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천(伊川) 선생이 대답하였다.
“마땅히 성의(誠意)로써 그를 감동시켜야 할 것이다. 이제 현령과 주부가 불화하는 것은 곧 사사로운 생각을 다투기 때문이다. 현령은 고을의 우두머리이니 만약 주부가 부형(父兄)을 섬기는 도리로 섬겨서, 잘못한 것은 자신에게로 돌리고 잘한 것은 오직 현령에게로 돌아가지 않을까 두려워해서, 이렇게 성의(誠意)를 쌓아 나간다면 어찌 남을 감동시키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或問 簿는 佐令者也니 簿所欲爲를 令或不從이면 奈何닛고 伊川先生曰 當以誠意動之니라 今令與簿不和는 便是爭私意요 令은 是邑之長이니 若能以事父兄之道로 事之하여 過則歸己하고 善則唯恐不歸於令하여 積此誠意면 豈有不動得人이리오.
[평설]
이 글은 『소학』과 『근사록』에 나온다. 아랫사람과 윗사람과의 관계를 말했다. 아랫사람이 좋은 취지로 일을 추진하려고 할 때에 윗사람이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흔히 사회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윗사람과 계속해서 반목한다. 둘째 아랫사람을 규합해서 윗사람을 압박한다. 셋째 윗사람의 지시만 소극적으로 따른다. 이중에 그 어떤 것도 좋은 답이 될 수는 없다. 이런 행동은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이럴 때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진심으로 상대방 마음을 감동시켜야 한다. 이 방법이 더디고 괴롭지만 최선의 길이다. 남을 감동시켜야 만이 일이나 관계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