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똑똑한 어리석음
세상에서는 고지식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음을 싫어할 줄만을 알지 대저 어리석음이 귀한 것인 줄은 알지 못한다. 옛날 안회는 공자 문하의 고제(高弟)였다. 공자께서 그의 현명함을 칭찬하여, “어리석은 듯 하나 어리석지 않다.”라고 하였으니 이 어찌 보통 사람과 큰 차이가 없겠는가. 대개 정말로 어리석은 것은 진실로 마땅히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나 어리석지 않으면서도 어리석은 듯이 보이는 것은 안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자공은 총명하기는 하였지만 (지나간 것을 말해줘야) 올 것을 알았고, 자하는 독신하지만 공자를 일깨우는 데 불과했으니, 안자가 묵묵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깨달아서 공자의 말씀에 기뻐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겠는가.
아! 세상에는 진실로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여서 다른 사람의 선함을 가리며, 남의 말을 뺏어 자신의 말을 꾸밈으로써 외부에 현혹시켜 자신을 파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람이 진짜로 어리석은 사람인가? 어리석지 않은 사람인가? 나는 그러므로 어리석음에는 싫어할 것도 있지만, 또한 귀하게 여길 것도 있다고 본다.
나의 친구 경우(景愚) 씨는 안자를 배우는 사람이다. 그의 자가 이와 같으니 그의 마음이 간직된 바를 알 수 있다. 내가 이에 「우잠」을 지어 오직 서로 권면할 뿐만 아니라, 또한 스스로 경계하는 데에 쓴다.
잠에 이른다. 아! 어리석은 무리는 이리저리 재어보지만 흐리멍덩하고, 지혜로운 사람의 어리석음은 묵묵히 있더라도 그 마음은 이미 환하게 밝은 것이 있다. 어리석지 않음에도 어리석은 듯 보이는 것은 실제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처신한 것이며,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하는 것은 사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어리석음이여! 어리석음이여! 어리석을 데에는 어리석어야 하고, 어리석지 않아야 할 데에는 어리석지 않아야 한다.
世號戇者曰愚. 人皆知愚之可惡, 而不知夫愚之所可貴也. 昔顏氏子, 聖門高弟也. 夫子稱其賢, 則曰如愚, 曰不愚, 是何無大異於尋常人也. 蓋眞愚, 固宜人之所惡, 不愚而愚, 非顏子, 不能也. 賜也穎悟, 知來而已矣, 商也篤信, 起余而已矣. 豈若顏氏子默識心融, 無所不悅於夫子之言也哉. 嗟乎! 世固有矜己之長, 掩人之善, 勦其說澤其言, 以眩售於外者矣. 是眞愚耶? 不愚耶? 余故曰, 愚有所可惡, 而亦有所可貴也. 吾友景愚氏, 學顏子者也. 其字如是, 其心之所存, 可知己. 余乃作愚箴, 非唯以相勉, 亦用自戒耳. 箴曰, 嗟顓愚之徒, 辨焉而夢夢, 哲人之愚, 默焉而其心己融. 不愚而愚, 有焉若無, 不知而知, 而實自誣. 愚乎愚乎! 愚於其可愚, 不可愚於其不可愚.
-박팽년(朴彭年, 1417~1456), 「愚箴 幷序」
[평설]
안회는 공자가 제자 중에서도 가장 아끼던 인물이었다. 다른 제자들의 장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안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다. 안회는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박팽년은 친구인 강희안에게 이 글을 주면서 어리석음의 긍정적인 점들을 환기시켰다.
요즘은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에게 위해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본인은 그것이 다 세상살이에 똑똑한 처세라고 생각을 한다. 세상은 똑똑한 사람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망하게 마련이다. 똑똑한 척 하면서 똑똑하지 않은 것은 헛똑똑이이고, 어리석어 보여도 어리석지 않은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여기에 두 개의 길이 있다. 약아 빠진 헛똑똑이가 될 것인가, 묵묵히 있어서 어리석어 보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인가.
[어석]
1. 어리석은 듯 하나 어리석지 않다:『논어』,「위정(爲政)」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안회(顔回)와 함께 온종일 이야기하였으나 내 말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였다. 안회가 물러간 뒤의 사생활을 보건대 또한 나를 깨우치기에 충분했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子曰:‘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라고 보인다.
2. 자공은∼알았고:『논어』,「학이(學而)」에 “자공은 비로소 시를 함께 얘기할 만하도다. 지나간 것을 말하여 주니, 앞으로 올 일까지 알고 있구나.[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라고 하였다.
3. 자하는∼불과했다: 『논어』,「팔일(八佾)」에 “나를 일깨운 사람은 상(商)이로다.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만하구나.[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라 나온다.
4. 경우(景愚):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