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혹형
酷刑
산서성(山西省) 성 밖에 진사(晉祠)가 있는 지방에 선술집이 있었다. 삶은 당나귀 고기가 가장 향기롭고 맛있어서 멀고 가까운 곳에서 그 명성을 듣고 사람들이 노향관(鱸香館)이라 불렀는데, 대개 노(鱸)를 빌어서 여(驢)로 삼았다. 그 방법이 암탕나귀 한 마리를 매우 살지게 길러서, 먼저 술을 가지고 취하게 하고, 온몸을 때렸다. 그 고기를 가르려고 할 적에는 먼저 네 개의 말뚝을 박고 발을 거기에다 얽어맸다. 그리고서 나무뿌리 하나를 가지고 그 등에다 가로 질러서 그 머리와 꼬리를 매어서 당나귀로 하여금 꼼짝 못하게 된다. 처음에는 펄펄 끊는 물로 그 몸을 적시고, 그 털을 긁어내서는 다시 잘 드는 칼을 가지고 가른다. 그래서 앞 뒤의 넓적다리를 먹으려 하거나 어떤 이는 뱃살을 먹으려고 하고, 어떤 이는 등을 먹으려고 하며, 어떤 이는 머리와 꼬리의 고기를 먹으려 해서 각각 손님이 먹고 싶은데로 고기를 내놓는다. 손님들이 젓가락을 댈 때에 그 당나귀가 여전히 죽어서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건융(乾隆) 신축(辛丑)년에 이르러서 장백산(長白山)의 파연삼(巴延三)이 산서(山西)의 방백(方伯)이 되어서 장차 우두머리가 된 자를 참수형을 처하기를 의논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변방의 먼 곳에 군대에 충원시키고 돌을 새겨서 영원히 금지시켰다.
山西省城外有晉祠地方,有酒館. 所烹驢肉最香美,遠近聞名,群呼曰“鱸香館”,蓋借“鱸”爲“驢”也. 其法以草驢一頭,養得極肥,先醉以酒,滿身排打. 欲割其肉,先釘四樁,將足捆住,而以木一根橫於背,系其頭尾,使不得動. 初以百滾湯沃其身,將毛刮盡,再以快刀零割. 要食前後腿,或肚當,或背脊,或頭尾肉,各隨客便. 當客下箸時,其驢尚未死絕也. 至乾隆辛丑年,長白巴公延三爲山西方伯,將爲首者論斬,其餘俱邊遠充軍,勒石永禁.(《梅溪叢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