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붙인 글 55

–조선의 좌우명-

by 박동욱

나이 쉰에 맞는 새해


아! 나는 올해 나이가 어느새 쉰 살이 되었다. 지난 49년 간의 마음가짐과 처신을 되돌아 보니, 마음에 부끄러운 점이 많이 있었다. 어버이를 섬김에는 볼만한 행실이 없었고 조정에 나아가서는 재앙을 자초 했으니 부자께서 이를 바 “사십이나 오십이 되도록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나를 두고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두려워하면서 마음에서 반성을 하여서 하늘이 밝게 명하신 것을 저버리지 아니할 바를 생각해서 그 잠을 만들어 스스로 경계하노라.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리석은 내 인생이여. 기에 구애 되고 외물에 빠져서는 몸을 단속치 못하여 하루도 마치지 못할 듯 했네. 근본 이미 잃었으니 어느 곳인들 막히지 않겠는가. 어버이를 섬김에는 건성이었고 임금을 섬김에는 의리가 없으니 나도 남도 모욕하여 소와 말로 취급하네. 나이 아직 젊다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나이 쉰 살이 되었으니 노쇠하기 시작하는 때이네. 공자께서는 천명을 알았고 거백옥은 49년의 그릇됨을 알았네. 내가 비록 인품은 낮으나 또한 하늘이 주신 것을 받았네. 이미 알고 있다면 어찌 이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반성을 어찌하면 될 것인가. 공경으로 할 뿐이네.

의관은 반드시 단정하고 처신은 반드시 공손히 하며 행실은 반드시 독실하게 하고 말은 반드시 미덥게 하며 욕심 막기를 성(城)과 같이하고 분한 마음을 없애기를 빗자루로 쓸어 내는 것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니, 옛날 교훈들에 마음을 가라앉혀 상제(上帝)를 대해 듯 하여야 할 것이네.

감정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기상을 구해야하고 이미 감정이 드러난 뒤에는 그릇됨을 경계하여야 하네. 동정 간에 서로 길러 안팎을 함께 지킨다면 영대(靈臺)가 맑고 깨끗해지고 마음이 빛나게 될 것이네. 진실로 이와 같아야만 사람이라고 할 것이네. 이로써 환란에도 평소의 맘을 잃지 않고 이로써 안락해도 교만한데에 이르지 아니하면 발 디딤 늦었지만 허물 고치는 것이 귀하다네. 성현(聖賢)도 또한 사람이니 이렇게 하면 성인이 되리. 봄은 오직 한 해의 머리이요, 날짜는 바로 정월 초하루이네. 이렇게 경계의 글을 적어 죽을 때까지 지키리라.


噫! 余今年忽五十矣. 追思四十九年前處心行己之道, 多有可愧於心者. 事親, 無可觀之行, 立朝, 有自作之孼, 夫子所謂四十五十而無聞焉者, 非余之謂乎. 於是惕然反諸心, 思所以不負乎天之明命者, 而爲之箴以自警焉. 其辭曰, 余生之惷, 氣拘物汩. 儳焉厥躬, 如不終日, 本旣失矣. 何往不窒. 事親不誠, 事君無義, 自侮人侮, 牛已馬已. 齒之尙少, 容或不思, 今焉五十, 始衰之時. 仲尼知命, 伯玉知非. 余雖下品, 亦受天畀. 旣已知之, 胡不顧諟. 顧諟伊何. 曰敬而已. 衣冠必整, 居處必恭, 行必篤實, 言必信忠, 防慾如城, 除忿如篲, 潛心古訓, 對越上帝. 未發之前, 求其氣象, 旣發之後, 戒其邪枉. 動靜交養, 內外夾持, 靈臺澄澈, 方寸光輝. 允若乎茲, 是曰人而. 以之患難, 不失素履, 以之安樂, 不至驕恣, 立脚雖晩, 改過爲貴. 聖賢亦人, 爲之則是. 春維歲首, 日乃元始, 書茲警辭, 服之至死.

-정온(鄭蘊, 1569~1641), 「元朝自警箴 幷序」




[평설]

정온이 제주도 유배지에서 쉰 살의 나이에 새해를 맞으며 쓴 글이다. 나이는 초로에 접어 들었고 처지는 여전히 쓸쓸했다.『논어(論語)』, 「자한(子罕)」에 “40세나 50세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라는 공자의 말씀이 유독 귓전을 맴돌았다. 세상에 살았던 자취도 제대로 남기도 못하고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이 엄습해 왔다. 공자는 나이 쉰에 천명을 알았고 거백옥은 쉰 살에 마흔 아홉 살까지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을 했다. 그래서 스스로 무거운 반성을 한번 해본다.

부모에게도 임금에게도 제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만 같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던지 옷차림, 처신, 행실, 욕심, 분노 등을 하나하나 점검해 본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새해인데도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다짐은 과거에 대한 쓰라린 회오(悔悟)에 자리를 양보했다.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이지만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절망감도 함께 읽힌다. 그는 55살에 유배지에서 풀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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