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붙인 글 66

–조선의 좌우명-

by 박동욱

벙어리로 살련다


가령 내가 벙어리라면, 말하고자 한들 할 수 있겠는가. 남들이 내가 벙어리인줄 안다면, 또 너에게 무슨 잘못이 되겠는가.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병이고, 벙어리가 아닌데도 벙어리가 될 수 있다면 무슨 뜻이 있어서이다. 만약 혹시 벙어리도 아니고 벙어리행세도 할 수 없다면, 누가 나에게 뜻이 있다고 여기겠는가.

使我而瘖, 雖欲言得乎. 人知其瘖, 又於汝何誅. 瘖而不能言病也, 不瘖而能瘖心也. 倘或以不瘖而不能瘖, 孰謂汝有心者.

윤기(尹愭, 1741∼1826), 「能瘖箴」




[평설]

윤기의 글에는 벙어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는 벙어리로 살기를 맹세한다는「誓瘖」이란 글을 쓰기도 했다. 대부분의 잠(箴)은 희망과 다짐을 담지만 윤기는 절망과 자조(自嘲)를 담았다. 벙어리가 아니지만 벙어리로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삶은 벙어리보다도 슬픈 삶이다. 입을 열지 않겠다는 다짐은 입을 열어봐야 소용없다는 절망감의 표출이다. 그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병 때문이 아니고 마음 때문이었다. 마음이 닫혔기에 말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의 절망에서 나의 절망을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책상 앞에 붙인 글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