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붙인 글 67

–조선의 좌우명-

by 박동욱

세 번 입을 꿰매라


말의 실수는 군자가 걱정하는 것이다. 말을 두고서 순임금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했고, 부열은 부끄러움을 일으킨다 했네. 경솔하게 말을 하면 허튼 소리가 되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면 지루해 지네. 함부로 말을 하면 상대는 거슬려 하고 거칠게 말을 하면 오는 말도 틀어지네. 흰 구슬의 흠은 갈아 없앨 수 있지만 네 마리가 끄는 말로도 말[言]은 따라잡기 어렵네. 재화(災禍)는 혹 이유없이 찾아 오고 환란은 으레 예측할 수 없는 것이네. 수치와 모욕이 이미 극에 달한 뒤에 더욱 후회한들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어수의 경계[語樹之戒]와 촉항의 두려움[屬垣之懼, 담장에 귀를 대고 엿듣는]은 옛날에 있어도 오히려 그러 하였는데, 하물며 말세에 있어서랴. 나는 속마음을 털어놓으나 사람들은 눈을 흘겨 보는 사람이 많고, 이전에는 친구였던 무리들이 지금에는 원수가 되었네. 일침을 놓아 상대를 물리치기 어렵다면 입을 꽉다무는 것도 본받을 만하네. 잠언을 지어서 벽에 걸고 보면서 성찰하려 하네.


樞機之失, 君子所憂. 舜謂興戎, 說云起羞, 易誕煩支, 肆忤悖違. 圭玷尙磨, 駟舌難追. 灾或無妄, 患輒不測. 羞辱旣極, 尤悔何益. 語樹之戒, 屬垣之懼, 在古猶然, 矧爾末路. 我則輸心, 人多側目. 昔者朋類, 今爲仇敵. 難施一針, 可法三緘. 作箴揭壁, 用備省監.

조관빈(趙觀彬, 1691~1757),「愼口箴」




[평설]

말의 실수를 네 가지로 들었다. 말의 실수는 한번 저지르면 회복하기 힘들다. 또, 말은 말하는 사람의 본의보다 듣는 사람의 해석이 중요하다. 내가 솔직하고 진실되게 말한다 해도 상대방이 곡해하거나 왜곡하여 듣게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다. 말의 적정선은 찾기 어렵고 힘드니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나을 때가 더 많다. 조관빈은 왜 이렇게 말에 대해서 신중할 것을 강조했을까? 그는 평생토록 파직과 유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그가 무심코 했던 말들이 자신의 궁액(窮厄)을 초래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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