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붙인 글 74

–조선의 좌우명-

by 박동욱

쇳물과 우유죽


먹는 것은 중이 의지하여 도를 닦기도 하지만 이것이 잘못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식당에 명을 짓는다.

먹는 것이 적당하다 하자니 지옥에서 쇳물을 입에다가 부었고, 먹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하자니 부처님도 우유죽[乳糜]을 마시었네. 약을 쓸 때 병에 알맞은지 보아야 하니 꼭 달아야만 된다든지 꼭 써야만 된다고 말하면 미친 사람 아니면 바보라네. 사물에 집착 있으면 해가 되지 않을 사물이 없고, 사물에 집착 없으면 어떤 사물이든 덕을 이루게 되네. 만일 마음에 집착하면 사물이 있든 없든 모두 문제가 되니, 먼저 깨친 사람들이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모두 생각하라 하셨지.

食者, 僧所倚以修道業, 而此所由以成過咎也. 於是乎銘其堂云.

謂食以宜, 道洋銅灌口, 謂食以不宜, 乳麋或取. 惟樂之設, 視疾之宜, 必甘必苦, 非狂卽癡. 物於其物, 物無非賊, 無物之物, 物或成德. 苟存諸中, 有無俱玷, 先覺有言, 口口作念.

계응(戒膺), 「식당명(食堂銘)」


[평설]

이 글은 사찰의 식당에 붙여 놓으려고 쓴 것이다. 먹는 일은 생존에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늘 옳지만 않다. 먹는 것이 옳은 일이라 하지만 지옥에서는 배가 고프면 고통만 가져다 주는 쇳물을 목에 들이 부었고, 먹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 하지만 단식과 금식을 주로 하던 부처님도 고행을 하다 기력이 떨어져 거의 죽을 지경에 처녀가 가져다 준 우유죽을 먹고 기운을 차려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먹는 일이나 먹지 않은 일이 옳은 일이 되기도 하고 그른 일이 되기도 한다. 선승(禪僧)이라고 먹지 않은 일에만 집착하는 것도 결국 깨우침에 방해되는 일이다. 필요 이상으로 절식(絶食) 하다가는 깨우침은 고사하고 생존도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예 먹고 먹지 않음의 경계마저 깨부수는 것이 중요하다. 무조건 먹지 않아야 하는 집착에 빠지지 말고, 적당히 먹어 가며 수행을 하라는 선배 스님의 후배 스님을 향한 고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책상 앞에 붙인 글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