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통한 인생론-
펀치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면, 맷집은 어떠한 외부적인 시련에도 절대로 허물어지지 않는 내구력을 말한다. 강한 펀치로 상대방을 멋지게 링바닥에 눕혀야 하지만, 강한 맷집으로 경기 중간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잘 때려야 하는 만큼이나 잘 맞아야 한다. 세상살이도 이와 다르지 않다. 능력은 출중하지만 내구력이 형편없어서 인생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도 많다. 대개 세상에 대한 맷집은 밖으로부터 오는 시련과 고통을 견디는 힘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신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내구력과 복원력을 유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맷집은 이 두 가지를 다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복싱은 주먹만 강하다고 능사가 아니다. 어떤 선수는 주먹은 강했지만 형편없는 맷집 탓에 챔피언이 되지 못했거나 챔피언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주먹이 약한 선수는 챔피언이 될 수 있지만 맷집이 약한 선수는 챔피언이 될 수 없다” 위대한 선수 뒤에는 항상 남다른 맷집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강한 맷집을 가진 선수가 강한 펀치를 갖은 선수를 이기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강한 주먹으로 상대를 휘청이게 하거나 단 한방으로 상대를 다시 일어날 수 없게 할 수 있지만, 약한 맷집은 상대의 변변찮은 주먹에도 경기에 패할 수 있게 만든다. 맞으면서 견디어야지 상대를 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법이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경기를 장악했다가도 상대방의 주먹 한 방에 경기에서 지기도 한다. 삶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실력으로 승승장구 하던 사람이 단 한 번의 실패와 좌절을 끝내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엄청난 실력이 있는 선수도 남들에게 펀치를 허용하기 마련이다. 세상이나 남에게 단 한 번도 상처입지 않고 싫은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말은, 복싱 경기에서 상대에게 한 대도 맞지 않고 회피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세상에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맞으면서 끝까지 기회를 노려야 한다. 맷집이 약하다면 적어도 적에게 펀치를 맞고서 아픈 내색을 숨겨야 한다. 아픈 것을 노출하는 순간 그곳이 가장 약점이 되어 더욱 집요한 공격을 받게 된다. 아프다고 아픈 것을 드러내면 더 아픈 일이 기다리기 마련이다.
일명 ‘링 위의 도살자’로 불렸던 마빈 해글러(Marvin Hagler)는 80년대를 풍미한 미들급 최강자였다. 두란, 헌즈, 레너드와 얽히고 설킨 최강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기술도 탁월했지만 강철 턱으로도 유명했다. 은퇴할 때까지 단 한차례의 다운도 허용하지 않았다. 레너드에게 애매한 판정으로 지자 주저 없이 은퇴를 택했다. 은퇴도 그의 경기 스타일만큼이나 화끈하게 결정하였다.
한국계로 알려진 일명 GGG, 게나디 골로프킨(Gennady Golovkin)은 무시무시한 하드 펀처로 유명하다. 그는 화끈한 주먹 못지 않게 대단한 맷집을 함께 갖고 있다. 그와 싸웠다가 패한 윌리 먼로 주니어는 “그의 펀치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완벽하게 꽂았다고 생각한 펀치를 몇 번이나 받아내고도 멀쩡한 그의 모습에 모든 의욕을 잃었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자신의 정타 공격을 맞고서 끄떡없는 모습에 절대로 허물어뜨릴 수 없는 상대를 만난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 셈이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Floyd Mayweather Jr.)는 무패로 은퇴한 선수다. 상대의 공격을 어깨로 흘려 버리는 숄더롤로 유명하다. 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엄청난 테크니션 임에는 분명하다. 그는 화끈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기 보다는 아주 영리하게 경기를 운영한다. 맷집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도 역시 대단한 맷집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훌륭한 선수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맷집을 갖고 있었다. 뛰어난 자질도 맷집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니 맷집을 통해서 다른 기술들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세상살이도 이와 똑같다. 세상의 온갖 공격과 시련을 온몸으로 맞서며 버티어야 한다. 맷집이야말로 세상의 난타전으로부터 자기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다. 피할 것은 피하고 그래도 맞아야 할 것은 맞아야 한다. 때로는 버틸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펀치도 온 몸으로 쓰러지지 않고 버티어야 한다. 버틸 만한 펀치는 누구나 버틸 수 있지만 버틸 수 없는 강렬한 펀치는 아무나 버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