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통한 인생론-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은 분만할 때 의료 사고를 당해 언어장애와 안면신경마비를 얻게 된다. 그는 애초부터 배우로써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가정은 불우했고, 학교생활은 원만치 않았다. 대학 중퇴 뒤에 엑스트라를 전전하다 생활고에 소프트 포르노 배우 생활까지 했다. 그야말로 인생의 막장까지 몰렸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답답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의 경기를 우연히 보게 된다. 당연히 무하마드 알리의 승리로 싱겁게 끝날 것이라 예상되었던 경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척 웨프너가 의외의 선전을 펼쳤다. 결과는 척 웨프너가 15라운드에 종료 19초를 남기고 TKO를 당했다. 하지만 15라운드까지 버틴 그의 투혼이 매우 인상적인 경기였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우연히 이 경기를 보고서 영감을 얻어 3일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그는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감독과 주연을 시켜 달라는 조건을 걸며, 여러 영화사를 돌아 다녔다. 여러 영화사의 거절 끝에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사에서 스탤론의 의견을 절반만 받아들여 주연만 맡기기로 결정했다. 영화는 제작비 1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단 28일간 동안 촬영을 마치고 완성된다. 드디어 1976년에 개봉하여 1억불의 총 수익을 얻게 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여 여러 매체에서 소개한 바 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록키이고 록키가 실베스터 스탤론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전적인 영화로 만든 셈이다.
록키는 이렇게 불린다. 이탈리아 종마(Italian Stallion) 록키 발보아(Rocky Balboa)다. 그의 별칭은 이탈리아 종마라는 다소 상스러운 이름이다. 이탈리아 종마라는 말이 그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들과 다른 이색적인 별칭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챔피언 크리드의 도전자가 뜻하지 않게 부상을 입자, 그 이름 덕분에 크리드의 도전자로 간택이 된다.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대체로 뽑히는 인물이 된다. 록키란 이름은 록키 마르시아노(Rocky Marciano)란 챔피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전적은 49전 전승 43KO였다. 무패로 은퇴한 극강의 챔피언이었다. 록키는 그의 사진을 집안 벽에다 걸어 놓고 있었다. 록키는 록키 마르시아노가 되고 싶었던 이탈리아 종마였다. 그의 이름은 이처럼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슬프게 보여준다. 그는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은 초라했다. “발을 지면에 붙이고 별을 노래하라.” 발을 지면에 고정시키지 않고 별을 노래하는 것은 누구나 쉽다. 그건 사실 몽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떠한 꿈이든 현실화시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삶이란 그러한 불투명한 미래를 확실한 현재로 만드는 지난한 과정이다. 록키는 이탈리아 종마인 현재의 모습으로 록키 마르시아노가 되는 미래의 모습을 꿈꾸었다.
록키는 추심업자에다 삼류복서이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삶의 이력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추심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착한 추심업자(?)였으며, 4라운드 밖에 뛰어본 적 없는 삼류 복서였다. 그의 유일한 자랑이라면 오로지 앞선 64번의 경기 중에 단 한 번도 코가 부러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은 크리드와의 경기에서 단 1라운드에 코가 부러지며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록키는 그때까지 참다운 상대를 만나 진정한 승부를 해 본 적이 없었던 셈이다. 그동안 초라한 상대를 만났던 탓에 자신의 초라한 실력도 감춰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임자를 만나자마자 그의 초라한 실력은 밑천을 금세 드러내고 만다. 게다가 애드리안과의 연애도 서툴기 짝이 없다. 록키는 이렇게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인물에 불과했다.
록키는 크리드의 상대로 낙점이 된 뒤 술과 담배를 끊고 새벽에 일어나 날달걀을 먹으면서 경기를 준비하였다. 록키 시리즈에서 록키의 트레이닝 장면은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의 잠자는 열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Bill Conti의 Gonna Fly Now와 going the distance 두 곡이 유명하다. 나 개인적으로 going the distance(끝까지 버티어라!)를 훨씬 좋아한다. 이 음악을 들으면 피가 끓는 것 같으며 무슨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강인한 의지가 샘솟는다. 이 곡은 힙합 가수를 포함해서 여러 가수들이 샘플링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어쨌든 록키는 링에 당당히 섰다. 그리고 15라운드를 굳굳하게 버티어 냈다. 경기가 끝난 뒤에 크리드는 판정 점수에 귀를 기울지만 록키는 애인인 애드리안 만을 애타게 찾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경기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는 한번도 진정으로 강한 상대를 만나 버텨 본 경험이 없었다. 그는 버티었고 경기는 끝났다. 삶이란 결국 누가 더 얼마나 잘 버티느냐의 싸움이 아니겠는가. 록키가 아름다운 것은 언더독의 반란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잘난 놈만 이기고 살아남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록키는 모든 루저와 언더독에 감동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한다. 버티고 버티면 남을 이길 수는 없더라도 본인 스스로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본인을 이겼다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남들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잘난 거랑 잘사는 거랑 다른 게 뭔지 알아? 못난 놈이라도 잘난 것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나 여기 살아있다. 나보고 다른 못난 놈들 힘내라. 이런게 진짜 잘 사는 거야. 잘난 건 타고나야 하지만 잘 사는 거 너 할 나름이라고 –눈이 부시게, 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