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한시에는 옛 집을 찾았다가 느끼는 감회를 쓴 시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옛 집에서는 옛 추억을 떠올렸고 다른 이의 옛 집에서는 숨어 있는 사연을 읽어냈으며 권세가의 옛 집에서는 권력의 무상함을 떠올렸다. 지금도 남아 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곳, 바로 옛 집이다.
기장 밭에 묻혀버린 옛날의 집터
쌓인 돌엔 그을음 여태도 검다.
그 옛날 하루해가 저물 적에는
어머님은 창 밑에서 길쌈을 했네.
古墟禾黍中 堆石煤猶黑
昔日日斜時 阿孃窓下織
-이양연(李亮淵, 1772∼1853),「오주의 옛 집터[梧州舊居]」
어릴 때 살던 옛 집터를 찾게 되었다. 기장이 웃자라 집터를 덮고 있어서 옛 집이 맞는지 긴가민가하다가, 부뚜막이었을 돌에 남긴 그을음을 보고서 그제야 옛 집인 줄 알아차렸다. 어머니는 그 집에서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까지 길쌈을 했다. 추억은 부재의 부스러기들이지만 현존보다 강하게 추억 속으로 견인한다. 그는 옛 집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안 올 유년기 속에 서려 있는 포근한 어머니의 음성과 품속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집터만이 남아 있는 옛 집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으리라.
큰 길 가 멋진 저택 홰나무 그늘 짙어
솟을대문 마땅히 자손 위해 세웠으리.
몇 년 사이 주인 바뀌어 수레 말 찾지 않고
길 가던 행인만이 비 피해 찾아오네.
甲第當街蔭綠槐 高門應爲子孫開
年來易主無車馬 唯有行人避雨來
-이곡(李穀, 1298∼1351),「길가다가 비를 피하며 느낌이 있어(途中避雨有感)」
갑작스레 빗줄기 쏟아져 내려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저택 언저리에서 머물게 되었다. 누구의 집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홰나무와 높다란 솟을대문이 주인이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준다. 특히 홰나무는 정승을 상징하는 나무다. 아마도 집주인은 후손 중에 정승이 나길 바라며 뜰 안에 홰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권세 있는 집주인이 있을 때는 집에 중뿔나게 사람들이 들락날락 했을 테지만, 집주인이 바뀌고 나서는 우연히 비를 피해 머무는 장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시들은 여러 시인들이 읊었다.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은「대은암에 있는 남지정의 옛집(大隱巖南止亭故宅)」에서 남곤(南袞)의 옛집을 보고서 잘못된 처신으로 오명을 남기고 떠난 그의 선택을 비판했고, 박영(朴坽, ?∼?)은「낙산왕자의 옛집(洛山王子舊第)」에서 옛날 왕자님이 살던 집터가 꼬맹이들 놀이터가 되어 버린 일을 탄식하며 시를 썼다. 부귀영화가 얼마나 허망한 지를 옛 집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헤진 수건 낡은 경대 뉘엿뉘엿 해지는데
널 하나가 적막하니 울어댄들 뉘 들을까
빈 뜰에 쌓인 눈엔 발자국이 없는데
천 리 밖 그대 낭군 이제야 도착했소.
敗帨殘奩日欲曛 一棺冥寂叫何聞
虛庭積雪無人跡 千里阿郞始到門
채제공(蔡濟恭, 1720~1799), 「옛집에 도착하다(到舊第)」
채제공은 1750년(당시 31세) 가을에 경상도 병산으로 내려와 있었다. 이듬해 1월 폭설이 내린 날에 아내의 비보(悲報)를 접하게 된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서 산후후유증으로 세상을 돌연 떠났다.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폭설로 인해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낮에는 눈 속에 발목이 잡혔고, 밤에는 꿈속에서 아내를 만나 옛 기억에 빠졌다. 어렵게 도착한 집은 더 이상 그 예전에 집이 아니었다. 아내가 썼던 물건들은 벌써 주인을 잃고 수택(手澤)만 남아 있었고 널 하나만이 덩그란히 있었다. 추상적인 아픔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왔다. 그간 함께 살던 집을 옛 집이라 제목 붙였다. 아내가 없는 집은 짧은 순간에 돌연 옛 집으로 바뀌어 버리고 함께한 기억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가끔 지나다 옛 집을 보게 된다. 그 집에는 어떤 사연으로 어떤 사람들이 지금은 살고 있을까. 예전의 아팠거나 즐거웠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간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집을 거치게 될까. 옛집을 지나면 까닭없이 눈물이 울컥하고 흐른다. 지금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기억으로 채워지고 있어서, 다시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는 그 옛날 나의 집을 스쳐 지나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