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이제 부부가 한평생 함께 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해로(偕老)는 함께 늙어갔다는 말이니, 그 자체가 그들의 성실과 인내를 증명한다. 그들은 서로를 애틋하고 측은하게 여기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다. 노년의 눅진한 사랑은 서정주의 「내 늙은 아내」, 김광균의「木像」과 황지우의「늙은 아내에게」등 많은 현대시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한시에서는 노부부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한 그루 늙은 버들 두어 서까래 집에
머리 하얀 영감 할멈 둘이 다 쓸쓸하네
석 자가 아니 되는 시냇가 길 못 넘고서
옥수수 가을바람 칠십 년 살았다오
禿柳一株屋數椽 翁婆白髮兩蕭然
未過三尺溪邊路 玉䕽西風七十年
길가의 마을 집이 옥수수밭 가운데 있는데 두 늙은 영감 할멈이 오손도손 지낸다. 그래서 영감 나이가 몇이나 되었느냐 물었더니 일흔 살이라 한다. 서울에 올라갔었느냐 하니 일찍이 관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무얼 먹고 사는가 하고 물으니 옥수수를 먹는다고 했다. 나는 남북으로 떠다니며 비바람에 휘날리던 신세라 영감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망연자실하였다.[路傍村屋, 在䕽黍中, 兩翁婆煕煕自得. 問翁年幾何, 七十. 上京否, 未曾入官. 何食, 食䕽黍. 余於南北萍蓬, 風雨飄搖, 見翁聞翁語, 不覺窅然自失.]
김정희,「시골집의 벽에 쓰다[題村舍壁] 병서(竝序)」
늙은 아내를 다룬 한시는 유배지에서 쓴 것이 많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남편은 아무것이나 해줄 수 있는 남편보다 더 슬프고 미안하다. 이즈음 추사는 우연히 시골에 사는 노부부를 만나게 됐다. 그들은 서울에 가본 적도 없고, 먹을 것이라곤 옥수수뿐이었다. 행복할 일도 없어 보였지만 행복해 보였다. 추사는 불현듯 유배를 온 것이 자신의 욕망과 욕심 때문이었다는 걸 그들의 모습을 보며 깨닫게 된다. 아무 욕심 없이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행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사(寒士)의 마누라는 약한 나라 신하 같아
이미 기구한 운명을 평생토록 이르게 했네.
노고도 아픈 데도 많지만 고칠 의술 없으니
조물주의 생사 주관 한결같이 따르리라.
寒士妻如弱國臣 已敎窮命到終身
多勞多病醫無術 一聽化翁生死人
조병덕(趙秉悳),「늙은 아내가 병들어 누워 있어서[老妻病卧吟 三首]」
질병은 가난보다 더 가혹하다. 가난은 노력 여하에 따라 벗어날 수 있다지만 질병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가난한 처지의 아내를 약소국의 신하에 빗대어 절망감의 깊이를 더했다. 세 수의 연작시인데 나머지 시에서도 자신에 대한 자책이 주를 이룬다. 노년의 아내를 다룬 시들은 연작시나 장시 또는 율시가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절구시로는 주로 늙은 아내에 대한 소묘(素描)를 그릴 수는 있지만 아내에 대한 핍진한 정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는 아내의 질병에 대한 안쓰러움과 자책, 순명의 자세를 담았다.
인생의 부부란 건 천륜의 중함인데
늙어서 의지하니 이보다 친함 없네.
한 번 죽음 비록 한날 죽기는 어렵지만,
이별 뒤 홀몸으로 남는 것 어찌 견디랴.
人生夫婦重天倫 到老相依此莫親
一死縱難同一日 那堪別後獨留身
섣달 초10일은 늙은 아내 정부인 진주김씨가 세상을 떠났으니 결혼한 정과 한 몸이 된 의리가 지금 51년째 되는 해이다. 아들 셋이 있고 손자 다섯이 있으니 무슨 남은 원망이 있겠는가. 하지만 만약 시를 지어 위로한다면 비록 천 수나 만 수의 시를 짓더라도 오히려 한스러움을 다할 수는 없다. 종질(從姪) 동직(東稷)이 먼저 세 편의 절구를 보내서 혼자 있는 회포를 위로했다. 그러므로 좋지 않은 감정을 누르고 붓을 달려 화답을 하고 멈추었다.[臘月初十日老室貞夫人晉州金氏別世, 結褵之情, 配軆之義, 今爲五十有一年矣. 有子三人有孫五人, 有何餘寃而若以詩爲慰, 則雖千萬首有不能盡其恨也. 從姪東稷先寄三絶以慰我幽獨之懷. 故仍抑情走和而止. ○ 三首]
신학조(辛鶴祚),「늙은 아내와 곡하며 이별하다[哭別老室(三首)]」
신학조의 유별난 아내 사랑은 여러 시에 남아있다. 제목은 아내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길고 애달프다. 결혼생활 51년 동안 아들을 셋 낳고 손자를 다섯 낳았다. 남들이 여한 없이 잘 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복을 받은 삶이라 입찬소리를 할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그저 아내가 죽은 것이 슬플 뿐이다. 아내의 죽음에 천 수나 만 수의 시를 짓더라도 모자람이 있다는 말에서 아내에 대한 깊이를 알기 어려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같은 날에 함께 죽자던 허망한 약속을 뒤로 하고 아내는 죽어서 혼자 남겨져 의지할 곳이 없게 된 막막한 심정을 시로 담아냈다.
한 남자와 여자가 강렬한 끌림과 열정으로 부부로 맺어지지만, 사는 내내 언제나 그만큼의 사랑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서로에 대한 강렬한 자장(磁場)은 어느새 정서의 공유로 옮겨 간다. 하지만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지나고 견디는 가운데 생겨나는 연대 의식과 동지애는 그 어떠한 사랑보다 서로를 끈끈하게 만들어 준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지만 그래도 부부는 여전히 아름다운 이름이고, 아내는 여전히 아픈 이름일 수밖에 없다. 세월의 모든 성상(星霜)을 겪은 노부부의 모습은 그것 자체로 인생의 훌륭한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죽음으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노부부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