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회혼(回婚)은 해로한 부부가 혼인한 지 예순 돌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다른 말로는 회근(回巹)이라고도 한다. 회갑(回甲)과 회방(回榜)과 함께 3대 경사였다. 회혼은 과거에는 짧은 수명 탓에, 현재에는 만혼(晩婚) 탓에 경험하기 힘들어졌다. 이래저래 하늘이 허락한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다.
머리 흰 부처는 고금에 드무나니
빛나는 노인성(老人星) 두 옷깃을 비추네
잔 들어 같은 해에 태어났음 축하하고
수건 다니 옛 갑자가 돌아옴 즐겁네
소반 과일 무르익어 선도의 유자 같고
섬돌 꽃 향기로워 수천(壽泉)의 술에 엉기었네
검버섯 흰 머리로 팔십까지 해로하길 기약하니
꽃다운 인연이 전생부터 깊었기 때문이네.
頭白夫妻罕古今 輝輝南宿映雙襟
稱觴堪賀同年降 懸帨方歡舊甲臨
盤果爛如仙島橘 階花香凝壽泉斟
梨顔蒜髮期偕耋 祗是芳緣夙世深
이덕무(李德懋),「어떤 부부의 환갑을 축하함[賀人夫婦周甲]」
메오토젠자이 (夫婦善哉, Meotozenzai)라는 드라마는 궁핍한 집안의 여자와 화장품 도매상 집안의 방탕한 남자가 그리는 사랑 이야기다. 여기 나오는 남자는 호색한에다 애주가에다 책임의식까지 없다. 한마디로 여자가 절대 만나서는 안 될 부류의 남자였다. 부부란 꼭 바르고 좋은 자질의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사람을 만나서 다른 한 편이 끝까지 버리지 않고 견디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부부든 고비와 시련은 있기 마련이다. 그 순간만 지혜롭게 넘긴다면 오히려 부부 사이는 그전보다 단단해질 수도 있다. 다른 부부를 축하하는 환갑이나 회혼예(回婚禮)를 다룬 시들이 많다. 이런 시들은 다른 노부부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담으면서 자신의 부부를 한 번쯤 반성하는 계기도 함께 가져다준다. 위의 시는 동갑내기 부부의 환갑을 맞아 축수와 장수를 기원하고 있다.
육십 년 세월일랑 순식간에 지났어도
복사꽃 화사한 봄빛은 신혼 때와 똑같았네.
생이별과 사별은 사람 늙기 재촉하건만
슬픔 짧고 기쁨 많아 성은에 감사하네.
이 밤에 목란사 소리는 더욱 좋고
그 옛날『하피첩』엔 먹 자국 남아 있네.
헤어졌다 합친 것이 참으로 내 모양이니
합환주 잔 남겨서는 자손에게 물려주리.
六十風輪轉眼翻 穠桃春色似新婚
生離死別催人老 戚短歡長感主恩
此夜蘭詞聲更好 舊時霞帔墨猶痕
剖而復合眞吾象 留取雙瓢付子孫
정약용(丁若鏞),「회혼시, 병신년 2월 회혼례 3일 전에 짓다[回巹詩 丙申二月回巹前三日]」
회혼은 본인과 배우자 모두가 건강해야만 가능할 수 있으니 부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 할 만하다. 허명신(許命申)의「늙은 아내(老妻)」에서는 “스무 살에 내 집에 시집 와서 올해 나이가 일흔네 살 되었네. 6년을 능히 지날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회혼례가 이 해에 있을 터인데.[二十歸吾家, 今年七十四. 六年能過不, 重牢此年是]”라고 하여 남은 세월 건강하게 지내고 6년 뒤에 맞을 회혼례를 기대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또, 장재한(張在翰)은 막내아들의 죽음을 당한 뒤에 회혼례를 맞게 된 참담한 심정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다산은 1836년 2월22일 양주의 소내에서 세상을 떴다. 마침 부인 홍혜완(洪惠婉)과의 회혼일이었다. 결혼할 때 다산은 15살이었고, 부인은 16살이었다. 18년을 떨어져 살다가 18년을 다시 함께 살았다.「沙坪別」,「蛾生」,「寄內」 등의 시들에는 다산의 부인에 대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다. 60년이 순식간에 흘러갔어도 화사하게 핀 복사꽃은 신혼 때와 다름없이 또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내에 대한 마음은 60년 전과 다름없지만 육신은 늙고 병들었다.『하피첩』은 1810년 아내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빛바랜 다섯 폭 치마를 강진으로 보내와 이것으로 공책을 만들어, 아들에게 훈계의 말을 적었던 필첩이다. 몇 해 전 3책의 『하피첩』원본이 세상에 공개되어 알려졌다. 그들의 사랑은 하피첩과 합환주 잔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산은 이 술잔에「回巹宴壽樽銘」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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