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4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아이가 태어나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체험이다. 이때부터 자식으로만 살다가 부모가 되어 살게 된다. 기쁨은 물론이거니와 막중한 책임감도 함께 생겨난다. 아이는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는 단 하나의 사람이다. 다른 호칭은 누구에게나 들을 수도 있지만 이런 호칭은 자식이 아니면 들을 수 없다. 자식이란 세상이라는 고독하고 쓸쓸한 공간에서 진짜 내 편 하나를 얻는 일이다. 보통 자식의 출생을 생자(生子), 득아(得兒), 첨정(添丁), 세아(洗兒) 등으로 표현한다.




얻거나 잃거나 순리대로 받을 터니

아들이라 기뻐하며 딸이라 슬퍼하랴.

저 하늘이 아득한 것 아닐 것이니,

끝까지 백도처럼 아들 없진 않으리라.

得失唯當順受之 生男何喜女何悲

彼蒼不是茫茫者 未必終無伯道兒

송몽인(宋夢寅), <딸을 낳다〔生女]>


하늘이 주시는 대로 받으면 그 뿐이니, 아들이라고 기뻐할 것도 딸이라고 슬퍼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딸을 낳아 서운한 마음만은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가 정작 하고픈 말은 3, 4구에 담겨 있다. 백도(伯道)는 진(晉)나라 등유(登攸)의 자(字)이고, 백도무아(伯道無兒)라는 고사의 주인공이다. 등유는 난리 통에 자식을 잃은 뒤로 후사(後嗣)가 끊어졌다. 속내는 이렇다. 지금은 딸을 낳아 조금은 아쉽지만 어차피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결국은 아들 하나만은 꼭 얻고 싶다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송몽인은 서른한 살에 죽었고, 끝내 아들을 볼 수는 없었다.





아! 나는 어릴 적에 고아가 되어

슬픈 맘이 일마다 새로웠었네.

아비를 부르던 일 어제 같건만

오늘 새벽 나 또한 자식 낳았소.

이미 족히 세 식구 이뤄졌으니

도리어 이 한 몸을 얽매이누나.

이 내 속내 누구에게 말을 전할까

남몰래 눈물 흘려 두건 적시네.

嗟我早孤露 悲懷遇事新

呼爺如昨日 生子又今晨

已足成三口 還敎累一身

衷情向誰說 暗地涕霑巾

이정직(李廷稷), <자식을 얻고서[得子有感 癸亥]>


아이가 태어나니 그 옛날 부모 생각이 자연스레 먼저 떠오른다. 아빠하고서 목 놓아 불러보던 그날이 엊그제 같건만 이제 자신도 아빠가 되었다. 이제 아내와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기쁘지만 막막하고 답답하지만 즐거웠다. 이런저런 복잡한 속내에 눈물이 흘러내리니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정작 본인도 알 수가 없다. 아버지가 된 후 느끼게 된 복잡한 감정이 짧은 시 안에서 긴 여운을 남긴다.




[1]

약아(藥兒)는 아직 젖도 못 떼었지만

배고프고 부른 것은 가릴 줄 알고,

제 엄마 흉내 내며 옹알거리며

별 셋 나도 셋이라 흥얼거리네.

藥兒未斷乳, 饑飽稍能諳.

學母牙牙語, 星三我亦三.


[2]

품에 안고 어르는 걸 어찌 멈추랴

세 살인데 폴짝폴짝 뛰기도 하네.

한 번만 웃어 줘도 시름 다 녹아

나에게 약이 되는 아이라 하네.

抱弄烏可已, 三歲能雀躍.

一笑忘煩憂, 是謂吾之藥.

이정직(李廷稷), <내게 약과 같은 아이[藥兒]>


1814년에 지은 것으로 여기 등장하는 아이는 이정직의 둘째아들인 이상건(李尙健, 1812~1876)으로 이상적의 동생이다. 아이를 낳으면 무거운 책임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행복감을 느낀다. 젖도 못 뗀 갓난쟁이지만 그새 할 것은 다한다. 배고프면 젖 달라고 보채고 옹알이도 제법하며 엄마의 노래에 따라 ‘별 하나 나 하나’를 읊어댄다. 둘째 수에서는 그새 아이가 훌쩍 커서 세 살이 되었다. 젖도 못 뗀 아이는 어느새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아이가 한번 웃어주면 나는 자지러진다. 세상의 시름과 가장의 책무 따위는 그 웃음 한 번에 다 사라지고 만다. 제목이 참 인상적이다. 약아(藥兒), 곧 약이 되어 주는 아이란 뜻이 된다. 어느 가수는 ‘비타민’이란 노래를 불러 딸아이를 비타민에 빗댔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이 삶을 살아갈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똑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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