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5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하제시(下第詩)


소과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34.56세이고 대과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37-38세였다. 마흔 줄에 합격한 사람도 적지 않았고, 85세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이들도 몇 번씩 과거시험에서 낙방을 경험하였다. 이황은 소과에 세 번이나 낙방을 했고, 이항복은 진사시에 떨어져 성균관에 입학하지 못했으며, 정약용도 대과에 네 번이나 낙방을 했다. 시험의 실패는 자신의 감정만 추스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낙담도 함께 견디어 내야 한다. 낙방은 문신처럼 선명했고 급제는 전설처럼 아스라했다. 그들은 낙방의 아픔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과거 본 이 안 오고 해 이미 저무는데,

온 집안 종놈들은 얼굴빛 서글프네.

해마다 과거 시험 반찬으로 다 소비해,

다시는 창 앞에 새벽 닭 울음 들리잖네.

館者不來日已西 渾家僮僕色悽悽

年年費盡場中饌 無復窓前聽曉鷄


이항복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지봉유설』에만 실려 있고, 문집에는 나오지 않는다. 과거를 치른 사람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차마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서 저녁까지 집에 모습도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종들도 눈치가 빤해서 표정이 다들 어둡다. 과거 시험장에 가는 사람은 닭으로 만든 반찬을 싸가던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러 번 과거시험을 치르느라 시험장에 갈 때마다 온 집의 닭을 잡아먹어 닭의 씨가 말라서, 새벽에 홰를 칠 닭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실패에 대한 자조적(自嘲的)인 토로가 인상적이다.




실의 하고 고향에 돌아와 보니

무슨 낯으로 늙으신 부모님께 절을 하랴.

구슬프게 찬 날씨 저물어 갈 때

옛날 용진 나루를 혼자 건너네.

失意歸鄕里 何顔拜老親

蕭蕭寒日暮 獨渡古龍津

조문수(曺文秀), <낙방 하고 고향에 돌아오다[落第還鄕]>


낙방을 하고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제일 먼저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을 뵐까. 게다가 저물녘에 날씨조차 차가우니 서글프고 울적하기 한량없다. 하제시 중에 나루터를 배경으로 한 것이 많다. 나루터는 고향으로 가는 배를 타는 곳이다. 고향으로 갈 설렘은 고사하고 고향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향에 도착하는 순간 개인의 아픔은 가족의 아픔으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용진 나루에 혼자 서 있는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처량하다.




보배로운 거울 갈아온 것이 사십 년인데,

그 빛이 멀찍이 중천의 해를 비추었네.

과장에서 값 기다려도 알아주는 이 없었으니

용강에 돌아가서 벽 위에 걸어 두리.

寶鏡磨來四十年 光輝逈照日中天

三場待價無人識 歸去龍岡壁上懸

이희석(李熙奭),「낙제를 하고 회포를 쓴다[下第懷述 丁巳]」


이희석(李熙奭, 1820~1883)이 38세 때(1857년) 쓴 시이다. 과거에 합격할 실력은 충분했지만, 남에게 과거시험 때문에 청탁하는 것을 꺼려서 번번이 과거시험에 낙방했다. 1구에서 자신을 ‘보경(寶鏡)’이라 표현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과거 합격이란 명예는 끝내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4구에서 자신의 집인 용강(龍岡)에 돌아가서 보경(寶鏡)을 벽에 걸어 두겠다고 함으로써 과거 포기를 암시하고 있다. 이 시는 폐과(廢科), 곧 과거 시험을 포기할 때의 감회를 적은 것이다. 본인에게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자탄이나 후회가 전혀 없는 것이 인상적이다.

때로는 실패가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때가 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시 점검하게 되고, 실패에서 외면치 않는 가족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더욱 분발하게 되며,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변변치 않는 존재인가를 다시금 알게 되어 겸손하게 된다. 그렇다고 실패가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익숙해지는 것도 곤란하다. 그러니 실패는 몇 번이면 충분하다. 보상처럼 성공이 찾아올 때 여태의 실패는 실패가 아닌 것이 되지만, 실패가 계속되면 실패는 고통스런 도돌이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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