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천연두
천연두는 통상 여섯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처음 열이 나고[初熱], 두창의 반점이 솟아나며[出痘], 부풀어 오르고[起脹], 고름이 차며[貫膿], 딱지가 앉고[收靨], 딱지가 떨어지는 낙가(落痂)의 과정을 겪는데, 각 과정 당 3일이 걸린다. 통상 15일에서 20일이면 생사가 결정이 난다. 천연두로 확진된다 해도 마땅한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천연두는 금기(禁忌)나 기원(祈願)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슬픈 병이었다. 다행히 생명을 건지더라도 고열로 인해 실명(失明)하거나 곰보가 되기 십상이었다.
5살 때 천연두로 요절한 건 성영이었는데,
맹경이가 이제 어찌 5살에 천연두 앓게 됐나.
어슴푸레한 느낌이 마음에서 일어나,
모습이 눈 앞에서 어른대는 것 같네.
성영은 깨끗한 얼굴에다 고상함 겸하였고
맹경은 총명하고 효성을 다하였네.
창자가 만일 앎이 있다면 다 찢어졌을 것이니,
파협에서 창자 끊어지는 원숭이 소리 듣지 말라.
五齡痘夭女星英 孟敬今胡痘五齡
怳爾感從心上起 宛然形在眼中行
星乎氷雪兼蘭蕙 敬也聦明儘孝誠
腸若有知應裂盡 莫聽巴峽斷猿聲
이서(李漵), 「내가 22살 때 천연두로 5살 된 딸 성영을 잃었고, 지금 43살에 또 천연두로 5살 된 딸 맹경을 잃었으니 괴이하도다. 아이들을 위해서 시 한 수를 지어 서글픈 심정을 기록한다[余二十二時 以痘喪五歲女星英 今四十三 又以痘亦喪五歲女孟敬 恠哉 爲作一詩 以識悲懷]」
천연두로 인한 기구한 사연도 적지 않았다. 한 번에 여러 명의 자식을 같은 병에 잃거나, 여러 해에 걸쳐 여러 명의 자식을 같은 병에 잃기도 했다. 중년에 겪게 된 참척(慘慽)의 아픔은 청년에 겪었던 참척의 아픔과 다시 만나 아픔이 배가 됐다.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기구한 운명이 있었던가? 20년 터울의 두 딸이 같은 병에 걸려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말 그대로 단장(斷腸), 애 끊는 아픔이었다.
집에는 약초밭과 꽃밭이 있었기에,
살던 곳 어디든지 늘 따라다녔었지.
마음 아파 차마 책을 펼칠 수 없던 것은,
그 옛날 책 말릴 때 책 주던 너 기억나서지.
藥圃花園屋左右 閒居何處不從行
傷心未忍開書帙 曬日他時憶爾擎
심익운(沈翼雲), 「딸아이를 잃은 후에 처음으로 호숫가에 나오니 슬픈 마음이 매우 깊어 시를 써서 기록한다[喪兒後, 初出湖上, 悲悼殊甚, 詩以志之]」
천연두를 앓다가 세상을 떠난 셋째 딸 작덕(芍德)을 그리며 쓴 5편의 시중 한 편이다. 작덕이 1762년 2월에 세상을 뜨고, 4월에 처음 바깥출입을 하여 서호(西湖, 지금의 마포)의 집에서 쓴 글이라고 했으니, 상심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디를 가든 자신의 품을 맴돌던 아이, 집안 어디에나 그 아이와의 추억이 가득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책을 펴면 아이와 포쇄(曝曬)하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괴롭다.
작은 애 말 배워도 기쁘지 않았었고,
큰 아이 글 배워도 미덥지 않았었지.
완두창 앓고 나자 골격이 변하여서,
오늘에야 의젓하게 두 아들 있게 됐네.
내가 두 아들에게 큰 덕을 밝히게 하여
상감을 보좌해서 일할 수 있게 하리.
小兒學語君莫喜 大兒學字君莫恃
豌豆瘡成骨格變 今日居然有二子
吾令二子昭大德 擎天捧日隨所使
정약용, 「완두가(豌豆歌). 이때 두 아이가 천연두를 잘 넘겼다[豌豆歌 時兩兒痘完]」」
다산의 인생은 천연두와의 사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뿐 아니라 자신도 역시 천연두의 피해자였다. 그는 2살에 완두창(豌豆瘡)을 앓고 7살에 천연두를 앓으면서 오른쪽 눈썹 위에 생긴 흔적으로 눈썹이 세 개로 나눠지자 스스로 호를 삼미자(三眉子)라고 했다. 10세 이전의 저작을 모은『삼미자집(三眉子集)』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산은 풍산 홍씨(豐山洪氏) 사이에 6남 3녀를 낳았지만 정학연(丁學淵), 정학유(丁學游), 윤창모(尹昌模)의 아내 등 2남 1녀만이 생존하고 나머지 자식은 모두 요절했다. 세상을 떠난 6명의 자식 중에 5명이 천연두에 걸려 요절했는데, 그중 4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남겼다.『마과회통(麻科會通)』은 다산이 지은 천연두 치료법에 관한 책이다. 사연을 알고 보면 참으로 슬픈 책이다.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었던 아버지는 천연두에 걸려 죽어가는 자식들을 보고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속죄의 마음에서였을까? 치료법을 하나 둘 모아서 책으로 엮었다. 어쨌든 두 아들은 무사히 천연두를 잘 이겨냈다. 앞으로 임금을 보좌할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