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시를 절명시(絶命詩), 절필시(絶筆詩), 임명시(臨命詩), 임형시(臨刑詩), 사세시(辭世詩), 필명시(畢命詩)라고 한다. 형장의 이슬로 떠날 때나 스스로 순절(殉節)을 결심하며 결행하기 전이나, 병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할 때 주로 이 시를 짓는다. 언제나 옆에 있던 죽음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을 때 그 명징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둥둥둥 북을 쳐서 목숨을 재촉할 제
머리 돌려 바라보니 해가 기우네.
저승길엔 주막집 없다 하나니
오늘밤은 누구의 집에서 잘까
擊鼓催人命 回首日欲斜
黃天無一店 今夜宿誰家
성삼문, <죽음에 임해 절명시를 쓰다(臨死賦絶命詩)>
성삼문의 문집인『성근보집(成謹甫集)』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시는 성삼문이 처형장으로 가는 수레에 탈 때 지었다가, 수레를 따르던 대여섯 살 된 딸에게 건넸다 전해진다. 이 작품의 진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바 있기도 했다. 성삼문은 사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가 처형을 당했다. 대의(大義)를 따르다 죽음을 맞게 되었지만,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막막함만은 숨길 수 없었다. 과연 죽음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입추 되는 7월을 몹시도 기다렸는데
병 속에 보낸 하루, 한 해가 지나는 듯.
저녁에 가을바람 잡생각 날려 주니
나도 몰래 깊은 병이 저절로 낫게 되네.
苦待立秋七月節 病中過日如過年
秋風一夕吹煩惱 不覺沈疴却自痊
윤원거(尹元擧), <병중에 우연히 읊다 [임자년 7월 초에 병이 심해졌다. 절구 한 수를 지었으니 이게 마지막으로 쓰는 글이다][病中偶吟 [壬子七月初病劇, 賦一絶, 乃絶筆也]]>
그의 연보에는 죽음의 순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가 어떤 병을 앓았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름에는 더치고 가을에는 잦아드는 병이었다. 그토록 가을만을 고대했지만 도리어 병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절명시에서는 삶에 대한 집착보다 육신의 해방에 대한 갈구가 주를 이룬다. 죽음이 명료한 현실이 될 때 담담히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절명의 순간에 보이는 이러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태도는 죽음의 가공할 만한 폭력을 무력화시키는 듯하다.
일생을 수심 속에 지나 왔으니,
밝은 달 바라봄은 부족했었네.
만년토록 길이 서로 마주하리니
이번 길 나쁘다고만 하지 못하리.
一生愁中過 明月看不足
萬年長相對 此行未爲惡
이양연(李亮淵),「위독(病革)」
이 시는 생애 마지막에 읊은 절명시(絶命詩)이다. 수심 속에 살다보니 달도 볼 겨를이 없었다. 이제 죽게 되면 좋아하던 달을 마음껏 볼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죽음도 꼭 슬퍼할 일만도 아니게 된다. 달의 무한성은 인간의 유한성을 효과적으로 대체해 준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시사여귀(視死如歸)한 태도를 보여줬다. 그의 무덤은 달빛이 잘 드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절명시는 다른 어떤 문학 작품보다 죽음에 근접해 있다. 죽음을 예기(豫期)해서도, 타인의 죽음을 목격해서도 아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인 셈이다. 절명시가 아직도 유효한 메시지가 되는 이유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직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전언(傳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