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8 노비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노비


어릴 때 알렉스 헤일리의『뿌리』를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를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 역시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삶이 잘 그려져 있다. 흑인 노예와는 여러모로 다르기는 했지만 조선시대에도 노비가 존재했다.

제임스 팔레는 노비의 비율이 30%였던 조선 시대를 노예제 사회라고 규정한 바 있다. 논란이 있는 주장이기는 하나, 진위 여부를 차치해 놓더라도 노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옛날 노비들은 어떤 삶을 살아냈을까?




대야 깼다 어린 여종 혼내지 말 것이니

괜스레 타향에서 고생만 시키었네.

산집의 기이한 일 하늘이 날 가르쳐

이제부턴 시내 나가 내 얼굴 씻으려네.

莫爲破匜嗔小鬟 客居買取任他艱

山家奇事天敎我 從此前溪抔洗顔

윤선도(尹善道), 「여종이 낡은 세숫대야를 깨뜨렸기에[女奚破盥面老瓦盆]」


나이든 노비는 그나마 나았지만 어린 노비는 여러모로 다루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당근과 채찍의 양면책으로 어린 종을 대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어린 노비가 저지르는 실수는 주인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위의 시에서는 주인의 훌륭한 인품이 인상적이다. 이 시는 윤선도가 함경도 종성 땅에 유배되었던 시기에 썼다. 여종이 세숫대야를 깨서 복장이 터지지만 서울에서 먼 땅까지 와서 수발하는 정성을 생각하니, 차마 야단을 칠 수는 없었다. 시내를 대야 삼아 세수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물 뜨러가는 여자.jpg


나가서는 우물 안의 표주박 되고

들어와선 부엌 안 빗자루 돼라.

죽을 때까지 물 긷고 불 때게 되어,

머리와 배가 타고 썩어야 되리.

出爲井中瓢 入爲竈中帚

畢生供汲炊 頭腹從焦朽

이서우(李瑞雨), 「노비가 도망할 계책이 있었다. 장난삼아서 읊는다[奴婢有逃計 戱吟]」


주인들의 도망간 노비에 대한 감정은 복잡했다. 도망 노비에 대해 섭섭함이나, 엉망이 되어버린 일상에 대해 아쉬움을 함께 표현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인색한 태도를 반성하기도 하였다. 도망간 노비를 잡는 일을 추노(推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다시 잡아 오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위의 시는 제목에 ‘장난삼아 읊는다[戱吟]’라고 하였다. 농(弄)이란 사실을 밝히긴 했지만, 거의 저주나 악담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표주박이나 빗자루처럼 되어서 죽도록 모진 노동에 종사하라고 했다. 노비에 대한 배신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 셈이다.



꼴 베러가는 머슴.jpg


내가 인정머리 없는 것 부끄러웠고

네가 힘을 써 준 일이 너무 슬프네.

소생함에 곤란하다 버리지 않고

도리어 영사의 재능 사랑했도다.

어이 알았으랴 요절하여서

그 아이 보살핌 못 받게 될 줄

몇 번이나 꺼져가는 등불 밑에서

잠결에 “이리 오너라” 잘못 불러보네.

無恩吾有愧 服力爾堪哀

不棄蘇生困 還憐穎士才

那知成短折 未遣受培栽

幾度殘燈下 和眠錯喚來

신방(申昉), 「어린 종의 죽음을 슬퍼하다. 병서[哀小僕 幷叙]」


시와 함께 기록된 글을 보면 저간의 상세한 내용이 나온다. 아이는 이름이 중만(重萬)이었다. 원체 빠릿빠릿하고 부지런한 아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폐병에 걸려 17살 짧은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4구의 영사(穎士)는 당(唐)나라의 문인 소영사(蕭穎士)를 가리킨다. 그는 10년 동안 데리고 있던 종이 있었는데 모진 매를 자주 때렸다. 어떤 사람이 종에게 떠나라고 하자, 종은 “내가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훌륭한 재주를 사랑해서이다.” 하고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밤늦은 시간에도 부르기만 하면 금세 달려왔다. 한밤중에 버릇처럼 아이를 불러보다가 아이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퍼했다. 신방은 어린 종의 죽음에 진심을 담은 조사(弔辭)를 이렇게 남겼다.


노비 문서(복쇠라는 노비).jpg 노비 문서



-끝-

매거진의 이전글모기를 증오하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