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좌우명-
스스로 경계함
독서(讀書)와 강학(講學)은 오로지 이치를 밝히는 것으로 직무로 삼아야 하지, 많이 안다고 뽐내는 데에 뜻을 두어서는 안 된다. 처심(處心)과 행사(行事)는 오로지 도리를 따르는 것으로 위주로 삼아야 하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뜻을 두어서는 안 된다.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벗을 가려 사귐에는 꼭 정성과 믿음으로 하고, 사사로운 공손함과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苟容] 마음을 삼지 말라. 남을 대접하고 남과 사귈 때에는 반드시 관용과 용서로 하고, 해코지와 꾸짖음으로 마음을 삼지 말라.
분노를 참고 욕심을 막음은 다만 이미 일어난 뒤에 이를 누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평소에 학문을 논하는 즈음에 연구하여 밝혀서 분함과 욕심이 온 곳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선함을 따르고 잘못을 고침은 다만 보고 들은 뒤에 다스릴 것이 아니라, 마땅히 평소에 마음을 보존하는 즈음에 마음속으로 반성하여 그 선악의 소재를 살펴야 할 것이다.
讀書講學, 一以明理爲務, 而不以誇多爲意. 處心行事, 一以循理爲主. 而不以悅人爲意. 尊賢取友, 必以誠信, 而毋以私恭苟容爲心. 待人接物, 必以寬恕, 而毋以犯校責備爲心. 懲忿窒慾, 不但制之於已發之後, 當講明於平日論學之際, 以知其忿欲之所自. 遷善改過, 不但治之於見聞之後, 當內省於平日操存之際, 以察其善惡之所在. [已上兩篇。皆平日所述。故舊本散帙在上矣。今依手註。移錄于本記之下。]
-정개청(鄭介淸, 1529~1590), 「自警」
[평설]
책을 읽고 학문을 닦는 것은 이치를 밝히는 것에 힘써야 하지, 남들한테 많이 안다고 뽐내려 들면 안 된다. 마음가짐과 일처리는 도리를 따르는 것으로 주로 삼아야 하지, 남들 기분만 맞춰주려 해서는 곤란하다.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친구를 가려서 사귐에는 반드시 정성과 믿음으로써 해야 하고, 아랑 거려서 남의 비위나 맞추는 데에 마음을 써서는 안 된다. 남을 대접하고 남과 사귈 때에는 관용과 용서로써 해야 하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코지를 하거나 심하게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분노나 욕심은 일어난 뒤에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과연 그 분노와 욕심이 왜 발생하는 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지 의식적으로 분노와 욕심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분노와 욕심을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허물을 고쳐서 선함으로 옮기는 것은 보고 들은 뒤에 그렇게 하려 하지 말고, 평소에 선악이 있는 곳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선악의 본질을 깨달아서 참된 선행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 달려 있다. 나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한 뒤에야 진정으로 남들과의 관계도 회복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바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