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게 언어학 (올림피아드) 영업하기

초등학생 언어학 체험 수업 레파토리

by 사오 김 Sao Kim

지난 몇 년 동안 여기저기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린 학생들에게 언어학의 매력과 언어학 올림피아드의 재미를 ‘전도’해 왔다.(링크)


농담처럼 ‘영업’이나 ‘전도’라는 말을 쓰지만, 그 나이대 학생들이 언어라는 낯선 소재를 가지고 머리를 좀 써서 퍼즐 풀이 활동을 한번 해 보는 것, 언어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 보는 것,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어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만국 공통어가 아니라 독자적인 문법 규칙을 갖는 자연 언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에는 그 나름의 교육적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미래의 언어(학)덕후가 한두 명 생기면 금상첨화고


올 연말에도 다행히 좋은 기회가 마련되어서 이상 말한 활동들을 몇 번 해 보았다. 이번에는 유독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게 직접 눈에 보여서 보람이 있었다. 이번이든 그 전이든 혼잣말로 ‘재밌다’ 한 친구들, (내 기분 좋으라고?) ‘재밌어요’, ‘재밌었어요’ 말해 준 친구들 얼굴은 거의 다 기억한다. (몇 명 이름은 잘 모르겠고...ㅋㅋ)


그리고 몇 번 해 보다 보니 이제 ‘이 정도 나이대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 정도는 곧잘 이해하는구나, 이런 문제 정도는 곧잘 풀고 재미있어하는구나’ 하는 게 조금씩 파악되어서 좋다.


이제는 2시간이 주어지면 어떤 이야기를 어떤 순서로 풀어내는 게 최적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것 같다.


레파토리는 이렇다.


- 제일 먼저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주인공이 신기한 추리를 하는 걸 보여준다. 셜록의 대담하고 비약적인 추리는 비록 언어학을 비롯한 과학의 회의주의적 태도하고는 딴판이지만(일부 과학철학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영상을 통해 초반에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고, 언어학에 ‘겉으로 당장 드러나 보이지 않는 사실을 발견해 내는 기쁨/멋’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기에 꽤 좋다.

언어학하고 다소 무관하고 영상 길이가 좀 길어서 빼 보려고도 했는데, 빼니까 분위기가 확 쳐지는 걸 느꼈다. 앞으로도 비슷한 걸 하게 되면 그냥 유지하는 게 좋을 듯.


- 언어학에 있는 ‘발견의 기쁨’을 보여주는 취지에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제시하며 ‘샹폴리옹’과 ‘로제타 스톤’ 이야기를 해 준다. ‘클레오파트라’ 정도의 실제 표기 사례도 제시.

고대 문자 해독이 비록 현대언어학의 전형하고는 좀 다르지만, ‘여러분도 오늘 이런 걸 직접 해 볼 거다’라며 언어학 올림피아드 이야기로 넘어가기에 좋고, 몇몇 아이들이 이미 여기저기서 들어 본 친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다루기 좋다.

그리고 어차피 언어학 올림피아드 자체가 대학에서 배우는 언어학하고는 좀 다르고...ㅋㅋ


- 샹폴리옹이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언어에 ‘규칙’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언어에 숨겨진 규칙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언어학 올림피아드 대회를 소개한다. 오늘 우리도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하는 것처럼 비슷한 문제를 풀어 볼 테니, 오늘 할 활동이 재미있으면 나중에 도전해 보라고.


- 일본어와 한국어의 음성적 유사성에 놀래는 일본인 쇼츠 영상(링크)을 두 번 보여준다. 쇼츠 제작자의 표정이 익살스러워서 대부분 재미있어한다. 두 번 보여주는 이유는 영상이 20초라서 한 번 더 튼대도 시간상 무리가 없고, 너무 빨리 지나가다 보니 한 번만 봐서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 일본인이 왜 놀라고 있는지 묻고 설명. 일본인의 귀에 한국어가 너무 일어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어를 들을 때는 보통 못 알아듣지 않나, 그 이유는 일어와 한국어가 비슷하되 여전히 다르기 때문인데, 그냥 막 다른 게 아니고 ‘규칙에 따라’ 다르다, 고 설명하고 한자음의 ㅂ-:h-, -ㄹ:-tsu 대응을 파악하게 하는 문제 제시.


IMG%EF%BC%BF1930.jpg?type=w773 일본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출제되었던 문제와 컨셉이 유사하다


아이들이 의외로 엄청 금방 풀어낸다. 답을 말하는 아이에게는 근거를 요구한다. 그럼 또 다들 곧잘 말한다.


- 해설하고, 여유가 되면 일어의 p>h (‘하행전호’)같은 역사적 변화를 간단히 설명한 뒤, 일본어의 모든 단어가 그런 것은 아니고 한자어에서만 이런 대응이 나타난다고 언급해 주는 편이 좋고,


- 내가 일본어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아이들이 데이터를 보고 직접, 마치 ‘언어학자처럼’ 답을 알아낸 거라는 사실을 한번쯤 강조해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내 기억상 이런 점을 강조할 때 신기해하거나 재밌어하는 반응이 있었다.


- 알아낸 대응 규칙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예측해 볼 수 있도록 “はつらつ‘하츠라츠’ : ? ” 문제도 풀려 본다.



- 다음 단계. 언어에 규칙이 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런 규칙이 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이미 아는 언어 규칙의 예외로서 ‘children’과 ‘went’를 제시한다. 재밌게도 내 유도 질문에 *childs나 *goed라고 대답하는 학생은 좀처럼 없다.


- 언어 규칙에 이런 예외가 있음을 싫어한 사람이 있었다. 자멘호프 박사.

(사실 자멘호프가 싫어했던 것은 개별어 내 ‘문법 규칙’의 예외이고, 이 단계 직전에 아이들이 추론하고 적용해 본 것은 역사언어학적 이유로 나타나는 동계어 내지 차용어 간의 ‘음운 대응’ 규칙이니 같은 ‘규칙’이래도 성격이 좀 다른데, 아쉽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다 이해시킬 수는 없다.)


- 이 아저씨가 살던 곳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고 그래서 갈등이 많았다. 아저씨는 사람들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갈등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누구나 배우기 쉬운, 규칙에 예외가 없는 언어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에스페란토.


- 누군가가 언어를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언어에 구조가 있고 규칙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 여기서 어느 학생들은 ‘세종대왕!’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세종대왕이 만든 건 글이고 우리말은 그 전부터 있었다는 점, 자멘호프 아저씨가 만든 건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점을 분명히 설명했다. 언어를 만든다는 건 이를테면 여기 있는 ‘책상’을 stufa라 부르는 등 그런 거라는 식으로. 가장 흔한 언어 관련 오해 중 하나를 바로잡을 기회도 덩달아 가진 셈이다.



* 여기서 잠시, 언어학의 매력을 전도하는데 왜 에스페란토를 소재로 삼았는지 설명해 두자.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제시하여 문제를 풀리기에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 자멘호프가 쉽게 만들려고 의도한 만큼 아이들이 이미 알 만한 영단어와 같은 어근을 가진 어휘가 많고,

+ 규칙에 예외가 없으니 어린 학생들에게 혼란이 적고,

+ 자멘호프의 취지가 취지인 만큼 교육적으로도 ‘세계시민성’, ‘평화, 반전’ 이런 가치하고 연결짓기에 좋으며,

+ ‘인공 언어’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기에도 좋다.


그럼 다시, 왜 아이들에게 '인공 언어'의 개념을 소개하는고 하면,

+ 내가 굳이굳이 대가도 없이 시간을 내어 이런 영업을 뛰는 가장 큰 이유는 잠재적인 ‘언어학 입덕자’를 만들어내기 위함인데,

+ 평소 교류하는 언어학도/언어(학)덕후들 중에 ‘인공 언어’라는 개념이 '입덕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 한 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에스페란토를 접했던 경험을 콕 집어 이야기해 주어서, ‘이거다’ 싶었다.


+ 참고로 어떤 분은 퍼즐로서의 언어학 올림피아드가 재미있어서 언어학에 입덕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재미있다. 언어학 올림피아드 형식의 문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풀려 보는 건 그런 차원에서도 좋은 것 같다.


+ 한편 나의 입덕 계기는 인공 언어나 언어학 올림피아드가 아니라, 말하자면 대조언어학 내지 비교언어학에서 재미를 느낀 일이었다. 실은 인공 언어나 언올 모두 나는 잘 모르는 편이다.



이야기가 좀 샜다. 레파토리 설명을 이어가자.


- 아이들은 아래와 같은 활동지를 갖고 있다.

IMG%EF%BC%BF1945.jpg?type=w773 미리 나눠준 활동지의 첫 페이지


- 위 문제를 하나씩 다같이 풀고 원리를 설명하며 아이들이 에스페란토의 기초적인 규칙과 언어학 올림피아드 방식의 퍼즐을 푸는 요령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여기서 '뽀로로'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해 둘 게 있다.


- 초등학교 고학년에게 뽀로로는 너무 유치할 수도 있고, 애초에 세대가 안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어렸을 때조차 뽀로로를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일 수도 있고.


- 그러나 다행히 종이를 나눠줄 때부터 아이들은 ‘오 뽀로로다!’ 하면서 많은 호기심을 보였다.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문제를 미리 풀어 정답을 맞히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 그럼 왜 하필 뽀로로를 등장시켰는가? 에스페란토어는 기본적으로 모든 명사를 -o로 끝낸다. 고유명사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혼란을 방지하려면 그 규칙을 지키는 예문만 제시하는 게 좋아 보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친숙하게 여길 만한 캐릭터나 소재 중에 에스페란토 문법에 맞게 -o로 끝나는 말을 찾아 봤는데, 뽀로로 말고는 도통 떠오르는 게 없었다.


- 다행히 반응이 괜찮았다.


- 뽀로로 문제지를 다 풀어 본 시점에 아래와 같이 구글번역기로 방금 아이들이 직접 만든 문장을 보여줬어도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엔 아쉽게도 못 해 봤다. 이렇게 해 주면 자기들이 만든 문장이 실제로 어딘가에서 쓰이는 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았을지.

(LanguageSimp같은 사람은 ‘에스페란토 그거 아무도 안 쓰는 말 아니냐’며 조롱하는데, 내가 에스페란토에 별다른 애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건 좀 과장된 조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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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번역기처럼 직접적인 효과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에스페란토가 실제로 쓰이는 언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Wikitongues의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에스페란토 원어민('denaskulo'라고 하나 보다)이 에스페란토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영상이다. 한 번은 한국어 자동번역 자막이 지원됐었는데 그 뒤엔 안 돼서 그냥 영자막으로 보여주고 말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 이제 활동지를 한 장 넘겨 ‘팀전 문제’에 도전한다. 전에 블로그에 소개했던 문제랑 거의 같은 건데, 그걸 꽤 잘들 풀길래 약간 더 확장하고 대신 사전 및 문법 일람으로 쓸 수 있는 문항들(35~50)을 뒤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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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사를 쓰거나 see 대신 look at을 썼어야 하는 곳이 있을지도


- 3~4명이서 한 조를 이뤄 한 20분 고민하면 충분히 다 풀어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각보다 집중을 잘해서 놀랐다.


- “‘그란단’이 ‘큰’이니까 ‘말그란단’은 ‘작은’ 아니야?”라며 저희들끼리 열띤 논의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흡족하고 귀엽다.


- 다 풀고 나서, 또는 시간에 따라 풀이가 이뤄지는 중에 잠깐 내가 돌아다니며 직접 채점을 하는데, 조마다 대표로 한 명 것만 채점한다. 요때쯤에 ‘재밌다’라고 혼잣말하는 친구가 몇 명 있었다. ‘제가 원래 규칙 찾는 걸 좋아하거든요’라며 웃는 친구도 있었다.


- 팀전 풀이가 끝나면 간단히 해설하고, 자멘호프 아저씨가 최대한 쉬운 언어를 만들려고 했다는데 여러분이 직접 해 보니 쉬우냐, 어렵지 않더냐, 왜 어렵냐면 ‘유럽 사람들에게 쉬운’ 언어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서 에스페란토 형태소의 어원을 알려준다. Hundo는 독일어 Hund(‘닥스훈트’ 라는 말을 아이들이 먼저 하기도 하고, 내가 알려주기도 한다.)를, granda는 스페인어나 불어 단어를 알려주고, alta나 bona도 대충 라틴어 얘기. 그러고 보니 접두사 mal-의 어원도 말해줘야지 했는데 한 번도 못 말했다.



문제 푸느라 고생했으니 잠깐 신기한 거 구경하며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 자멘호프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쉬운 언어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주로 유럽 사람들에게만 쉬운 언어였다. 여러분이 관심 있으면 한국인에게도 쉬운 언어를 언젠가 만들어 볼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toki pona를 염두고 말한 건데 맞는 얘긴진 모름).


- 그러나 인공 언어를 만든다는 것에는 꼭 쉬운 언어를 만드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SF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어 또한 인공 언어다.


- ‘아바타’ 영화에 대한 이야기. 마침 최근 개봉한 영화이고, 알고 보니 초등학생들도 부모님과 함께 왕왕 관람하는 영화라 소재로 쓰기 좋다.


- 아바타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언어, Naʼvi어를 만든 Paul Frommer의 사진을 보여주며 에스페란토어를 만든 자멘호프처럼 대머리라고 말하면 다들 웃는다. ㅎ...


- 나비어 클립을 좀 보여주고 외계어처럼 들리냐, 만들어낸 언어가 외계어처럼 들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냐, 하면 대개 발음을 어떻게 한다는 대답이 나온다.


- 맞장구를 치며 발음을 최대한 낯설고 이상하게, 우리가 쓰는 소리와 다르게 만들면 이색적으로 들릴 거라고 말하고 나비어에 있는 방출음(ejective) ‘kx’의 소리를 시연한다. "kxa, kxi, kxu, kxe, kxo" 하면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떤 아이는 ‘어떻게 하셨어요?’ 하고 묻기도 했다.ㅋㅋ


- 나비어로 ‘바보’라고 말하려면 ‘skxawng’이라 하면 된다고 알려주고, 짐짓 ‘친구들한테 skxawng 하면 안돼~’ 하면 저들끼리 스까웅 스까웅 하고 논다. (skxawng은 아마 내가 중학생 때 알게 되었던 단어 같은데, 어쩌다 이럴 때 잘도 써먹는다.)


- 그럼 나비어를 만든 이 언어학자 아저씨는 어떻게 사람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았을까요? 그런 소리를 사용하는 언어가 실제로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학의 또 다른 재미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다양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발음 이야기만 하지만, ‘주어’라는 개념을 정의할 수 없는 언어(능격 언어를 염둠) 등 문법이 흥미로운 언어도 많습니다.


- 그러면서 아프리카 동남부의 Hadza어 영상과 EasyLanguages의 Khoekhoe어 흡착음 발음 강의를 보여준다. 다들 신기해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 외계어를 만들어낼 때는 우리 언어랑 최대한 다르게 만들면 된다고 하며 방출음을 시연했으니 어떻게 보면 방출음은 인간 언어랑은 다른 거라고 암시한 셈인데,

- 사실은 방출음이 인간 언어에서도 잘 쓰이는 소리라는 걸 곧바로 보여주는 거니까 좀 모순이다.


- Hadza어 영상에는 방출음도 나오고 흡착음도 나오지만 Khoekhoe어 영상에는 흡착음만 나온다.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은 대충 그냥 ‘신기한 소리’라고 뭉뚱그려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non-pulmonic이라 묶을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뭐... 언어학이란 게 이런 흥미로운 언어현상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 흡착음 구경을 하고 나면 수어 이야기로 넘어간다. 언어학에는 다양한 언어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는데 수어도 마찬가지다. 또는 귀가 안 들리면 어떻게 의사소통 할까요?라며 도입한다.


- 내 블로그에 실린 이런 글들을 보며 나라별 수어 동작을 직접 따라해 본다. 한국수어 '맞다'와 콜롬비아수어 '누구' 이야기까지 한다.

- 여기서 놀랍게도 수어가 만국공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친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어머님이 수어를 전에 좀 배우셨다고.


- 이처럼 수어는 나라마다 다르고 사투리도 있는 자연 언어이고 독자적인 문법 규칙을 갖춘 언어이다.


- 이제 이런 수어의 규칙을 직접 알아 맞혀 보자.


- 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수어 문자 문제를 대폭 간소화한 활동지가 맨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IMG%EF%BC%BF1931.jpg?type=w773 수어 동작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QR코드는 내 블로그로 연결된다.

- 당초의 수어 문자 문제도 원래는 초등학생용이라 생각하고 만든 거였는데 막상 만들어 보니 너무 어려웠고, 그래서 올해는 못 사용할 줄 알았는데, 천만다행히 전날인가 전전날에 문득 수어 동작과 스토키 표기 짝을 맞춰 둔 채로 제시하면 난이도가 확 내려가겠구나, 하고 지금과 같은 형태로 급하게 수정했다. 그래서 수향 기호를 대충 'ㅗ', 'ㅜ' 로 적고 말았다.


- 그래도 여전히 어려워할 줄 알았는데, 막상 시켜 보니 다들 적극적으로 곧잘 풀어내서 진심으로 감동했다.


한 번은 앞에서 시간관리에 실패하는 바람에 스토키 표기 문제를 통으로 못 했는데 영 아쉽다. 나눠는 줬지만 아마 다들 그냥 버렸겠지......


- 해설을 하고 나서 한국수어 ‘입’ 영상을 보여주며, 알아낸 규칙을 통해 이를 스토키 표기법으로 받아적어 보게 했다. 또한 다들 어려움 없이 곧잘 해냈다.


- 모든 활동이 끝나고, 여러분이 직접 규칙을 알아낸 이 표기가 내가 막 만들어낸 게 아니라 윌리엄 스토키라는 미국의 언어학자가 만들어낸 시스템이란 것, 그의 연구로 청각장애인의 언어 능력에 대한 오해, 수어의 정체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었다는 것, 이처럼 수어에도 문법과 규칙이 있다는 것,

그리고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누굴 가리킬 때 지문자를 쓸 수도 있지만 보통은 서로 얼굴 이름을 부른다는 다소 뜬금없지만 재미있는 사실,

머 그런 이야기를 쭈욱 해 주었다.



- 수어 문제까지 다 풀고 나면 마지막으로 언어학을 배워서 장차 어디에 쓸 수 있는지 알려주는 차례가 있다. 영업 측면에서 보면 뭐니뭐니 해도 챗지피티같은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는 게 짱인 것 같은데(한국 언어학 올림피아드의 공식 홍보문에도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왔던 듯), 언어학하고 인공지능하고의 연관성을 너무 강조하기에는 양심상 개운하지 않아서 인공지능 이야기는 그냥 간단하게 하고 넘긴다. “임진왜란아, 엄마아빠가 깨우지 않아도 잘 일어난 거야?”라는 옛날 인공지능 유머 클립 정도 보여주고 앞뒤에 몇 마디 붙인다.


- 고래가 언어를 쓴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 얘기도 한다. 동물 의사소통은 실제로 좀 흥미로워 보이는 분야다. 최근에 연구가 활발한 모양이니 여러분이 관심 있으면 나중에 연구해 보라고. 과학자들이 최근 고래와 서로 ‘안녕하세요’만 20분간 주고받는 데 성공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말하면 다들 잘 웃어 준다.


이렇게 하니 대충 딱 두 시간이 걸렸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재미있어했으며 분위기도 좋았다. 끝.


- 본문에 다양한 어형으로 활용되어 등장한 동사 ‘염두다’는 (‘염두하다’에 대한 규범적 지적을 비꼬는 차원에서?) 언어학방에서 만들어진 마이크로콘랭잉 결과물이다.


- 언어학을 잘 아시는 분들은 어쩌면 내가 아이들을 상대로 언어학의 정체를 왜곡해 소개했다고 지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입덕' 계기로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그 후의 탐구와 공부는 학생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니... 그리고 기준을 언어학 말고 언어학 올림피아드로 삼는다면 마냥 다르지만도 않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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